[경제 포커스]부동산-금융 ‘크로스오버’ 바람

  • 입력 2002년 12월 3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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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프라이빗 뱅킹의 이남수 차장이 고객에게 부동산 매물의 입지 및 교통여건 등을 설명하고 있다.김경제기자
조흥은행 프라이빗 뱅킹의 이남수 차장이 고객에게 부동산 매물의 입지 및 교통여건 등을 설명하고 있다.김경제기자
“은행원이 되리라고는 상상해본 일도 없습니다.”

조흥은행 서울 강남구 역삼동 프라이빗 뱅킹(PB) 지점에 근무하는 이남수 차장.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차장은 1996년 건국대 부동산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한화건설과 한국부동산신탁, 자산관리회사인 네오머니 등을 거치면서 순탄하게 부동산 전문가 과정을 걸어왔다.

그런데 올해 9월 이후 전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조흥은행이 역삼동에 PB 1호점을 열면서 이씨를 영입하면서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반면 부동산중개 프랜차이즈업체인 ‘유니에셋’의 정도현 사장은 이 차장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20여년간 리스크 관리 전문가로 활약하다가 지난해 3월부터 유니에셋의 사장을 맡고 있다.

부동산과 금융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가 은행원으로 옮겨가고 금융 전문가가 부동산 업계로 진출하는 ‘크로스 오버’ 현상이 최근 두드러진다.

부동산시장이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산담보부증권(ABS) 주택저당채권(MBS) 부동산투자회사(리츠·REITs)와 같은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이 대거 선보이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금융전문가가 부동산시장으로〓미국계 기업금융컨설팅 전문업체인 ‘딜로이트 투쉬’의 임승옥 상무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금융전문가였다.

첫 직장은 안진회계법인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각종 부동산 세금 관련 자문을 하면서 부동산과 인연을 쌓았다.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현재는 딜로이트 투쉬에서 각종 부동산개발사업의 인·허가와 사업타당성 분석 등을 전담하는 부동산사업 부문 총괄 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임 상무처럼 금융 전문가에서 부동산 전문가로 영역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가 최근 실시한 미국 공인재산관리사(CPM) 과정의 수강생 50명 가운데 금융권 종사자는 무려 21명. 이 가운데 6명은 시중은행 전·현직 지점장이었다.

부동산개발회사인 ‘글로벌테크 디벨롭먼트’가 12일부터 진행하는 미국 사업용 부동산투자분석사(CCIM) 과정에 등록한 40명 중 5명이 은행과 증권사 직원이다.

임 상무는 “부동산금융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부동산과 금융의 크로스 오버가 학원 강좌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전문가가 금융가로〓월간 부동산전문지 ‘부동산뱅크’의 취재기자였던 김재언씨는 올 7월 삼성증권 자산관리(WM·Wealth Management) 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가 은행권의 PB와 유사한 자산관리상품을 내놓으면서 부동산 전문가로 스카우트한 것. ‘건설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우건설 출신이라는 점도 인정받았다.

현재 그는 격주간으로 부동산 보고서를 작성하고 삼성증권의 시중 점포 4곳을 돌며 VIP 고객을 대상으로 부동산 컨설팅을 한다.

한국토지공사 출신인 오용헌 메리츠증권의 부동산금융팀장은 부동산 간접투자 상품인 리츠 판매를 주도하고 있다.

▽‘크로스 오버’가 활발한 이유〓직접적인 계기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부동산을 금융상품화하는 제도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두 영역을 모두 잘 아는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여기에 주택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면서 부동산시장이 주택 공급량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금리에 민감해진 것도 한 원인이다.

오 팀장은 “최근 움직이지 않는 자산인 ‘부동산(不動産)’을 유동화하려는 움직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며 “금융권에서 부동산시장의 바닥 흐름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두 부문 사이에서 직업을 바꾸는 사람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양 부문을 두루 아는 전문가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전문가를 찾는 수요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남수 조흥은행 PB 차장도 “앞으로 부동산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금융 전반을 아는 부동산 전문가, 부동산시장의 흐름을 꿰뚫는 금융 전문가의 역할은 더욱 빛날 것”이라 예상했다.

프라이빗 뱅킹 고객의 자산 비중 (단위:%)
구분부동산 자산금융 자산기타
은퇴한 자산가60400
활발한 투자가61381
최고경영자(CEO)53407
자영업자60382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 중역66322

프라이빗 뱅킹 고객의 부동산 상담 수요 (단위:%)
구분현재 부동산 상담 이용률향후 부동산 상담 이용 의향
은퇴한 자산가2410
활발한 투자가2346
최고경영자(CEO)1739
자영업자2920
전문직 종사자, 대기업 중역2620
자료:조흥은행 프라이빗 뱅킹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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