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국방부의 ´이상한 침묵´

  • 동아일보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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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간의 판문점 장성급 회담 대표이자 유엔사 부참모장인 제임스 솔리건 미 공군 소장. 그는 26, 28, 29일 세 차례나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구간의 지뢰제거 검증이 무산된 것은 정전협정을 무력화하려는 북측 때문이며,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는 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8일 국방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철도 도로가 연결되더라도 군사분계선(MDL)을 넘기 위해선 버스운전사라도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단언하다시피 한 그의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솔리건 소장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다음날인 29일 “남북 교류를 적극 지원하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붙이면서도 “남북간 차량운행은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상한 것은 우리 국방부 간부들의 태도. 이날 솔리건 소장의 세 번째 ‘경고’가 공개됐는데도 국방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솔리건 소장이 그렇게 얘기했나…”라며 오히려 반문하거나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봐야겠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입만 열면 항상 한미간에 긴밀한 공조를 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말이었다.
물론 속사정이 전혀 짐작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대북(對北) 정책 조율에 있어 유엔사와 우리 군간에 심각한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치면 그렇지 않아도 북한 핵문제로 어렵기만 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음직하다. 또 자칫 잘못하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으로 인해 확산 일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반미 감정’을 더욱 자극하게 된다는 걱정도 했음직하다.
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솔직히 우리도 혼란스럽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교류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언제까지 ‘지뢰제거 상호검증 생략’같은 ‘편법’으로 문제를 땜질해 나가겠느냐는 얘기였다.
한 실무자는 “대북정책을 맡고 있는 통일부나 외교통상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국방부의 이런 어정쩡한 모습은 딜레마에 빠져있는 현 정부 대북정책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윤상호기자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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