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박형준/어느 CEO의 기억에 남는 선물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26분


기자가 된 지 벌써 1년하고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다양한 분들을 만났죠. 오늘은 그중 가장 인상깊었던 한 만남을 소개합니다.

9월 초 한국후지제록스 다카스기 노부야(高杉暢也·60) 회장을 만났습니다. 평소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서울재팬클럽(SJC)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죠. 특별히 인터뷰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니고, 한국에 나와있는 일본기업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듣겠다고 방문 목적을 밝혔습니다.

오후 1시가 약속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2시에 약속장소인 후지제록스 본사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걷잡을 수 없이 내리면서 시청 일대에 차가 꽉 막혔기 때문입니다.

첫 만남이지만 다카스기 회장은 대뜸 “1시간이나 늦었군”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반말에다 얼굴 표정도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기에 저는 “스미마셍(죄송합니다)”만 연발했습니다. 꽤 자신 있었던 일본어도 그때부터는 막히기 시작하더군요.

“나고야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와…,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한국에 나와있는 일본 기업들 상황도 알고 싶고…, 한일간 뜻 있는 일도 해 보고 싶고….”

그러기를 30분. 빨리 자리를 뜨려는 저를 잡더니 갑자기 하시는 말씀이 “비 오는 날 일부러 찾아왔는데, 내 선물 하나 주지.”

그러시더니 컴퓨터를 꺼내 파워포인트로 회사 소개를 직접 해 주시더군요. 각종 기업관련 자료도 하나 둘 꺼내놓으셨고요. 1시간 가까이 저 혼자만을 위해 열심히 프레젠테이션을 해 주셨습니다.

기자를 위해 파워포인트로 직접 기업설명을 해 주는 최고경영자(CEO)…. 다양한 기업체 CEO를 만났지만 이와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설명을 듣는 동안 한국후지제록스뿐 아니라 일본 본사와 해외 지사에 대해서도 훨씬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덕분에 좋은 기사 소재도 발굴했고요.

악연이 될 뻔한 만남이었지만 좋은 인연으로 잘 발전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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