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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8일 1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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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에서 서울마라톤클럽 주최로 열린 제 3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100㎞ 부문에서 11시간을 넘게 달려 완주한 주부 이순복씨(李順福·44·전북 익산시)는 8일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결승점을 통과했던 당시를 이같이 회상했다.
마라톤을 하다 숨진 남편의 체취가 배인 옷을 입고 달린 이씨는 "언제나 옆에서 나란히 달리던 남편이 없이 혼자서 달려야 해 마라톤 코스가 저승길 보다 멀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함열초등학교 교사였던 남편 황현씨(48)는 지난달 13일 충남 강경에서 열린 황산벌마라톤대회 10㎞ 부문에 참가했다가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씨 부부는 주위에서 '철인부부'로 불릴 만큼 체력이 강하고 부부애도 남달랐다. 이 때문에 이씨는 지금도 남편이 마라톤을 하다 숨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이들 부부는 20년 넘게 함께 산을 다니면서 백두대간을 종주했고, 2000년부터 시작한 마라톤 대회에도 지금까지 23번이나 참가해 부부 모두 풀코스 3시간 30분대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9월초 이번 울트라 마라톤 대회 참가를 신청했던 이씨 부부는 대회를 앞두고 연습삼아 황산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하고 사고 당일 집에서 대회장인 충남 강경읍까지 26㎞를 뛰어서 갔다.
남편은 이날 10㎞ 부문을 뛰다 6㎞ 지점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남편 상을 치르면서 그녀는 다시는 마라톤을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대회가 가까워 오면서 남편이 그토록 달리고 싶어했고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대회라는 생각이 들어 "또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냐"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달리기로 했다.
3일 오전 5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서 출발한 레이스는 잠실대교∼여의도∼방화대교∼안양천 구간을 두 차례 왕복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코스였다.
그녀는 마라톤 내내 힘든 길을 혼자서 달리도록 하고 먼저 간 남편이 야속해 울었다. 특히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부부 팀들이 옆을 스쳐갈 때면 서러움이 복받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내어 울며 달렸다.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달리기가 힘들어서 그런 줄 알고 "힘내라"며 말을 걸어 왔다.
그녀의 기록은 11시간 21분으로 44세 이하 여자부문 3위였다.
대회본부도 이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 이씨에게 부부 완주증을 수여했다.
전주=김광오기자 ko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