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8…돌잡이 (14)

  • 입력 2002년 10월 15일 18시 08분


돌잔치 때는 돌상 앞에다 아기를 앉혀 놓는데, 방석 대신에 무명필을 접어 사용합니다.

왜 무명필이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하나. 무슨 유래가 있을 텐데,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면 부선 아줌마나 빙모님이 도와줄 테지만, 주인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무명필 얘기는 그만두자. 용하는 산파 모르게 잔 헛기침을 하고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상 위에 올려놓은 게 다 뭐지?” 이나모리 키와가 우철에게 물었으나 용하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다.

“이제 우근에게 상위에 차려놓은 것을 집게 해서 장래를 점쳐요. 실이나 국수를 잡으면 오래 산다고 하고. 열매가 많이 열리는 대추를 잡으면 자손이 번창한다고 하고. 쌀이나 돈을 집으면 부자고 된다고 하고. 붓이나 벼루, 종이, 천자문을 잡으면 학자가 되어 명성을 날린다고 하고. 화살을 잡으면 장군이 된다고 해요. 돌잡이라고 하지요”

용하는 돌잡이란 말에 아들이 산파에게 뭘 설명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낙담한 표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잔기침을 했다.

“여자아이는?”

“아버지, 여자아이 때는 상에다 뭐올리는데”

“자 화두(火斗) 쌀 국수 밤 실미나리 돈”

우철이 통역을 다할 때를 가늠하여 용하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에서는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이상시봉시(以桑矢蓬矢) 사천지사방(射天地四方) 남자사방지(男子四方志)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어떻습니까?”

“일본에서도 남자아이를 더 선호합니까?”

“일본도 같아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역시 남자아이가 태어나기를 고대하고,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만세를 부릅니다”

“같단다”

“댁은 자제가 몇이나 됩니까?”

“자식이 몇 명 있습니까?”

“아들은 하난데, 손자가 하나, 손녀가 셋입니다”

“아들은 하난데, 손자가 하나에 손녀가 셋이란다”

“한 명밖에 없는 자식이 아들이라니 대단하군요”

“대단하군요”

“오호호호호호, 뭐가 대단하죠?”

“하하하하, 한 곡 하시죠”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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