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행정수도' 신중하게 말하라

  • 입력 2002년 9월 30일 18시 45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어제 청와대와 중앙부처의 충청권 이전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새로운 것은 아니다. 행정수도 대전 이전은 71년 대선 때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가 주장한 이후 여러 차례 등장한 선거공약이다. 그때마다 수도권 인구분산과 국토 균형개발에서부터 안보상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와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런데도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행정수도 이전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또 그만한 한계와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노 후보의 대선공약과 관련해 우리가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도 당위성이나 필요성이 아니라 현실성과 효율성의 문제다.

우리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 볼 때 청와대와 중앙부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은 단순히 행정의 중심지를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와 권력, 금융과 산업, 교육과 문화의 중심도 따라 바뀌면서 국민생활 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와 사실상의 ‘천도(遷都)’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로 인한 이해관계의 상충과 사회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은 우선 국민적 공론(公論) 형성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막대한 비용과 기간이 소요되는 행정수도 이전은 구체적이고 정밀한 실행프로그램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입안된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실행기간을 20년으로 잡았다. 87년 전두환 대통령이 대전을 행정중심기능도시로 육성하는 사업계획을 발표한 이후 대전 정부청사에 청단위 행정기관이 입주하기까지도 11년이 걸렸다. 독일 통일 후 베를린으로 수도를 옮기는 데는 9년이 걸렸다.

지금은 상황도 많이 다르다. 수도의 기능도 바뀌고, 수도에 대한 인식도 바뀐 측면이 있다. 국가의 중추인 수도 이전 문제는 생활상의 변화는 물론 통일시대까지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장 선거 때 해당지역 표만을 의식해 원론적으로 거론하기에는 너무 중요하고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공약이 지켜진 적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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