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비상구없는 빈민가의 뒷골목 '레퀴엠'

  • 입력 2002년 9월 6일 17시 39분


□레퀴엠 / 허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312쪽 9500원 섬파란

이 책은 미국의 도전적인 전후작가 중 한 명인 허버트 셀비 주니어의 화제작으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연출한 동명 영화의 원작이다.

뉴욕의 할렘가 브롱스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해리는 친구와 함께 마약 중간 공급책으로 일하며 언젠가 순도높은 마약을 팔아 크게 한 몫 잡으려는 야심을 가졌다. 해리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유태인 아가씨 마리온을 만나 그에게 끌린다.

마리온에게 위선적인 부모는 환멸의 대상일 뿐이다. 그는 세상과 부모에 대해 냉소와 독설로 일관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내부의 의지는 강하다.

해리의 어머니 사라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해리마저 집을 나간 뒤 쓸쓸하게 홀로 지낸다. 사라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은 텔레비전. 우연히 방송출연 기회를 갖게 된 그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알약을 복용하지만 그 약은 마약의 일종인 각성제였다.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할 때마다 나쁜 일이 생긴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려놓은 등장인물의 구도를 던져버리니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왔다. 주인공은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인물들의 적, 바로 중독성이었다. 이 책은 인간 정신을 정복한 중독성의 승리에 대한 선언문이었다”라고 말했다. 빈민층의 어둠과 악, 척박한 생활에 대한 작가의 적나라한 묘사는 가치와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끌어주는 ‘비상구’와 같다. 동전의 양면처럼 말이다. 원제는 ‘Requiem for a Dream’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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