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창]심재룡/이중국적자의 정체는…

  • 입력 2002년 7월 26일 18시 41분


병무청을 들렀다가 나오는 아들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한여름에 정장을 차려입은 근엄한 모습에 어딘가 피곤과 짜증이 내비친다. 엊저녁 아니 오늘 오전 4시에 퇴근해 집에 들어온 탓일까. 피곤은 그렇다 치고 짜증이라니.

“그래 영구귀국과 일시귀국이 어떻게 다르다니?” “잘 모르겠어요. 국방연구요원이 병역을 대체하는 것이니까 영구귀국으로 해야 한다고 그러데요.” 10년의 외국 유학 학위과정 중도에 귀국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아들이 고맙기만 할 뿐인데, 피곤과 짜증 섞인 아들을 보는 필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국방 등 의무도 다해야▼

태어나면서부터 아들은 이중국적. 미국 땅에서 태어났으니 미국 시민이요, 큰집 작은집 두 집에 달랑 아들 하나로 대를 이을 호적에 올라 호주가 될 팔자이니 엄연히 한국인이다. 그 할머니는 TV를 보시는 대신 손자의 얼굴만 보아도 배가 부르고 즐겁다고 하셨다. 그런데 땅줄로는 미국인이요, 핏줄로는 한국인인 이중 국적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체는 하나이어야 하나 보다. 그래서 유년기에는 이중국적자였다가 국방 납세 등 시민의 의무를 지니게 되면서부터 성년의 이중국적자는 한국에서 양자택일의 기회가 주어진다. 하나의 국적을 택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국적을 택하면 교육의 경우 특례 입학이 허용되고, 병역의 경우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아도 좋다. 둘 다 특혜다.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특별한 대우를 받다 보니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혜를 위해 조기유학이다, 영어교육이다, 원정출산이다 별별 해괴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한국의 부모들 자녀들이 생긴다. 이중국적의 틈새를 노려 이익을 취한다는 발상이다. 그 특권 그 틈새 이익을 챙기지 않고 영구귀국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보통 아들아, 고맙다. 그런데 너의 정체는 뭐니.

지연 혈연 학연의 연줄로 꽁꽁 묶여 동창생 동기생 ‘동’자 돌림으로 모둠살이의 기본적 틀을 엮어가는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려는 너의 앞길에 너의 생래적 이중성에 어떻게 대처하려느냐. 지연 혈연은 그렇다 치고 학연은 어찌할래.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바꿔.” 우리 동창생들은 등산모임에서 농반진반 끈끈한 학연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한국사회는 이렇게 세 가지 연줄로 묶여 있다. 자유 평등도 아니고 수직적 위계질서도 아닌 고슴도치 제 새끼 함함하듯 끼리끼리 인정을 주고받는 사회다. 경쟁의 자유, 기회의 균등, 개인의 사생활 보호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소위 서양식 민주 사회에서 성장기를 보낸 네가 한국에서 앞으로 닥칠 수많은 문제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 걱정된다.

법률적 의미의 이중국적보다 더 큰 문화의 차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네가 어떻게 풀어낼지 아비는 걱정이 앞선다. 네 누이도 말하듯 너는 춘향이는 알아도 이몽룡은 모른다는 문화적 반푼이가 아니더냐. 캐나다 토론토대 앙드레 위미트 교수에게 한국근대사를 수강해서 너도 잘 알 것이다. 지난 100여년의 한국 역사가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왜곡하고 말살하려는 외세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다는 것을. 그래서 한국인들 사이에 ‘엽전의식’이라는 자조적 언사까지 생겨났다는 것을.

이제 월드컵을 계기로 그 자조적 언사가 정정당당한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안으로 수탈당하고 밖으로 침략당하던 구세대는 너희 당당한 신세대를 볼 적마다 눈물겨운 자긍심을 느낀다. 아들아. 우리 ‘당한’ 세대가 너희 ‘당당한’ 세대에게 한마디만 한다. 잘 살거라. 주눅들지 말고 연줄에 묶이지 말고 네 뜻을 펼쳐라. 어디서나 주인 노릇하며 살거라. “한국이 중국의 변방도 아니요, 미국의 앞잡이도 아니요, 일본의 흉내쟁이도 아니다”라는 독립군 외할아버지의 당부를 기억해라.

▼아들아, 역사의 주인이 돼라▼

아버지가 한때 ‘국적’없는 교수라고 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데서 이상한 연수를 받은 기억이 되살아나는구나.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당시 서슬이 시퍼런 개발독재 정권의 수하들은 예전 ‘독서당’ 같은 학문 연구기관을 졸지에 ‘훈련원’으로 탈바꿈시켜 멀쩡하게 조국에 봉사하겠다는 신임 교수들을 한데 몰아 놓고 ‘한국적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호도하는 훈련을 시키더라. 그때는 외국에서 공부하면 ‘국적’없는 교수란 별명을 얻었는데, 한 세대를 지나니 이제 너는 ‘이중국적자’란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러나 너의 정체를 당당하게 지니고 이중문화의 장점을 살려 한국역사의 주인으로 살거라. 아비의 간곡한 부탁이다.

심재룡 서울대 교수·철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