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cer report]축구발전 첫걸음 잔디구장

  • 입력 2002년 7월 17일 17시 43분


지금 이곳 제주에서는 백록기 고교축구대회가 한창이다. 전국 64개팀이 참가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들 어린 선수들의 기량이 급상승했다는 점이다. 월드컵이나 유럽 프로축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멋진 슬라이딩 태클, 오버헤드킥 등 묘기가 속출하고 있다. 다소 어설프기는 하지만 선수들은 TV에서 봤던 멋진 플레이를 연상하며 수준 높은 플레이를 펼치려 애쓰고 있다. 제2의 황선홍, 홍명보 또는 송종국과 김남일같은 우수한 선수들도 눈에 많이 띈다. 관중석에서 터져나오는 박수 소리도 여느때보다 크고 잦다.

왜 그럴까. 이 대회는 제주도내 4개 구장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 공설운동장, 서귀포 강창학 구장 2개면, 동부연습장이 그 무대. 모두 굵직한 프로축구 대회가 열렸거나 월드컵 기간 각국 대표팀이 연습구장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보기에도 시원한 녹색 잔디가 선수들의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끄는 용인축구학교 선수들은 전원이 고교 1학년인데도 대부분 3학년이 주전으로 나선 타 학교 축구부를 연파하고 8강에 올라있다. 자랑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처럼 이미 목표치를 넘은 성적이다. 바로 용인축구학교가 평소 잔디구장에서 연습했기 때문에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는 점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타학교 선수들은 기량면에서 물론 우수하다. 문제는 잔디구장이 당장 몸에 맞지 않다는 점이다. 어릴때부터 맨땅에서 연습을 해오다보니 의욕은 앞서는데 몸이 따르지 않는 셈이다. 고교 지도자들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훈련도 잔디구장에서 할 수 있다면…”하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은 그만큼 그라운드 조건이 성장기 선수들의 기량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이 4년후 독일 월드컵때도 감동을 이어가려면 지금이라도 100년 대계, 하다못해 10년 대계라도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첫 걸음이 잔디 구장이고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전국 월드컵경기장 주변 연습구장이라도 자라나는 선수들이 이용하게 한다면 그 효과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마침 전국에 축구학교 창설붐이 일고 있다. 좋은 현상이지만 이런 바람은 과거에도 있었고 대부분 유야무야 됐다. 이번만큼은 협회와 지도자들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

허정무/본보 축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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