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5…1925년 4월 7일(5)

  • 입력 2002년 6월 24일 18시 20분


“그래요, 그런 식으로” 산파는 회음이 찢어지지 않도록 항문 위를 거즈로 누르면서 “너무 세게 힘주지 말아요, 천천히, 아아, 머리가 앞으로 나왔어요, 머리를 돌릴 테니까” 라며 손가락을 넣어 머리를 반회전시키고, “천천히 천천히, 그래요, 이번에는 제대로 뒤로 나왔어요”라며 아기의 후두부를 손바닥으로 받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신 할매께 비나이다, 그저 무사히만 낳게 해주소서” 복이의 기도 소리가 높아진다.

“뜨거운 물을 준비해 주세요” 산파가 기도 소리를 끊었다.

“뜨거운 물 준비하란다” 우철이가 통역을 했다.

“어깨가 걸렸어요. 이제 한 번만 더 힘을 줘요. 그래요, 그렇게” 산파가 아기의 뒷목덜미를 손으로 받치고 약간 내리자 오른쪽 어깨가 미끄덩 빠져나오고, 왼쪽 어깨, 팔, 몸통, 허리, 다리…, 희향은 정신을 잃었다.

갓난아기는 막 적출한 장기처럼 산파의 두 손 위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산파를 고개를 숙여 갓난아기의 입에 입을 대고, 빨아들이고, 토하고, 빨아들이고, 토하는 순간, 갓난아기의 첫 울음 소리가 산실에 울렸다. 응애, 응애, 응애.

“남자 아이예요.”

산파는 탯줄의 박동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지혈 감자로 두 군데를 누르고, 삼끈으로 한 가운데를 묶어 모자를 갈라놓았다.

“할머니가 씻어주세요” 산파는 복이에게 갓난아기를 안겨주었다.

복이는 항아리 뚜껑에 담긴 따끈한 물로 갓난아기를 씻기고, 무명으로 만든 배냇저고리를 입혀 눕혔다. 그리고 산파가 희향의 몸에서 꺼낸 태반을 짚으로 싸서 양끝을 실로 묶어 놋대야에 담았다.

“감사합니다” 희향은 눈물이 번진 눈두덩을 살며시 열었다.

“건강한 남자 아이예요” 산파는 희향과 갓난아기를 번갈아 보았다.

희향은 딱딱하게 굳은 목을 돌려 복도에서 빼꼼 들여다보고 있는 소원에게 손짓했다.

“와서 봐라, 너 동생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낮부터 영남루에서 빌고 있다. 우철아 가서 아버지 좀 불러와라” 라고 말하고 복이는 산신상을 향해 오체투지의 절을 하고 쌀과 미역을 상에서 내렸다.

우철은 호롱불에 비친 엄마와 남동생의 얼굴을 보고서, 땀과 피냄새로 가득한 방에서 나와 심호흡을 했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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