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증시산책]실패도 잘쓰면 약

  • 입력 2002년 5월 19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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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여름의 한 토요일 오후. 3만5000여명의 야구팬이 몰린 미국 필라델피아 시베파크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왼손잡이 투수 밥 그로브에게 두 번이나 삼진 아웃을 당한 뒤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8회에서도 투스트라이크로 몰렸기 때문. 3 대 1로 지고 있었지만 주자가 2명 나가 있어 홈런 한방이면 역전이 가능한 상황에서 홈런왕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팬의 분노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팬들의 엄청난 야유에도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은 루스는 세 번째 볼을 야구장 밖으로 날려보냈다. 851개의 홈런을 친 루스가 1330번이나 삼진 아웃을 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예해방 등으로 미국의 최고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은 일리노이 주의원 낙선, 아름다운 약혼녀와의 사별(死別), 상원의원 낙선, 사업실패로 빚 갚는 데 17년간 시달리는 등 고초투성이 인생을 살았다.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헨델은 1741년 8월 뇌중풍으로 쓰러져 몸의 반쪽이 마비되는 고난을 이겨낸 뒤 ‘메시아’라는 불후의 명작을 작곡했고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라이언킹’ 등으로 유명한 월트디즈니를 세운 월트 디즈니도 1920년에 래프오그램이란 회사가 망해 1만5000달러의 빚을 안고 파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큰 성공을 이룬 사람 중 대부분은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춘하추동(春夏秋冬)이 되풀이되는 주식시장에서도 돈을 많이 잃었던 사람이 큰돈을 버는 경우가 적지 않다. 10년간 변호사를 해서 번 돈 등 십수억원을 하루아침에 날렸던 고승덕 변호사, 부산에서 24시간 편의점 사업을 해서 번 돈을 주식투자에서 잃었던 LG증권의 S씨, 퇴직금과 집 살 돈 등을 모두 날리고 집에서 버림받은 뒤 수십억원을 벌어 책까지 펴낸 여러 사람들….

라일락꽃의 달콤한 향기와 잎새의 쓴맛까지 아는 것이 첫사랑이라는 말처럼 삶과 주식투자에는 ‘실패의 역설’이 통한다.

하지만 실패한 사람이 모두 재기하는 것이 아니듯이 주식투자에서 돈을 잃은 사람이 모두 큰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었을 때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해하고 돈을 잃었을 때는 왜 손해봤는지를 꼼꼼히 되새김질하는 사람만이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

홍찬선 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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