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3…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3)

  • 입력 2002년 5월 2일 18시 06분


무당3 신태가 죽기 전에는 바람 같은 것도 안 피웠어

일곱 살 생일을 치른 후에 신태의 머리칼이 빠지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서 무당을 불러 우환(憂患)굿을 했지 저녁 다섯 시부터 다음 날 새벽 네 시까지 잠도 자지 않고 무당은 신태의 몸에서 잡귀를 쫓아내려 칼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잡귀야 물러가라! 신태는 이미 죽었노라고 신을 속이기 위해 허장(虛葬)거리를 한 것이지 신태를 마당으로 옮기고 돗자리로 둘둘 말아 돗자리 위에다 북어하고 칼을 놓고 아이고 귀여운 내새끼! 그리고 계란 세 개에다 부적을 그리고 이름을 써서 신태의 몸에 던져 되살아나게 했다 신태는 꼼짝 않고 참았어 한번도 울지 않았다 무당은 연신 명령했다 술을 따라라 이 술은 안 된다 다른 술을 가져 와라 우물에서 물을 떠와라 이 물은 안 된다 다른 우물에서 물을 떠와라 족발 열 개와 닭 한 마리를 사 와라 닭은 제 손으로 목을 따야 한다 밥을 지어라 다시 밥을 지어와라 신태 곁에 있고 싶었는데 나는 앉을 새도 없었다 그게 몇 월이었을까 생각도 안 나는구나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벚꽃은 다 졌고 붕숭아 꽃이 피어 있었으니까 늦은 봄이겠구나 미옥이하고 신자는 손톱에다 빨갛게 봉숭아물을 들이고 있었다 우환굿은 실패였다 엉터리 무당년! 5백엔이나 줬는데! 신태는 부산에 있는 제생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팔개월 동안이나 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다 전염병일지도 모른다고 남편과 딸들은 면회도 못 오게 했다 온 몸으로 통증이 번지고 안아줘도 아파해서 고작 손바닥을 살살 비비면서 얘기나 해줄 수밖에 없었다 신태야 얼른 나아서 엄마하고 집에 가야지 나도 집에 가고 싶어 아배 보고 싶어 아배 어깨에 무등 타고 달리라고 하고 싶어 죽는 날 아침 신태는 핏기 하나 없는 마른 입술로 집에 가고 싶다고 했어 목소리는 안 나왔지만 들을 수 있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말이야 나는 그 애 얼굴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고 속삭였다 그래 같이 가자 엄마가 업어줄게 그게 신태와 나눈 마지막 말이었어

결혼도 못하고 죽었으니 땅에 묻을 수도 없었다 화장을 하고 뼈를 밀양강 강물에 뿌렸다 우리는 해가 다 지도록 울면서 강물만 바라보았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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