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4…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4)

  • 입력 2002년 4월 21일 17시 26분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 것인가? 일본? 조선? 큐큐 파파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나라인들 하늘은 있을 텐데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한밤중인가? 왜 나는 자지 않고 달리는 것인가? 달리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왜? 큐큐 파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밤은 길어만 가는 것 같다 큐큐 파파 어딘가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부턴가 멀어질 뿐이라면?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잊혀 사라진 길을 빙빙 돌고만 있는 것이라면? 큐큐 파파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맨발로 뛰고 있는 모양이다 큐큐 파파 발바닥에 아무 느낌도 없다 풀? 흙? 자갈? 모래? 나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가?

큐큐 파파 다리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픔이 없는 탓인가? 큐큐 파파 입안에 침이 고인다 큐큐 파파 침을 삼킨다 큐큐 파파 흙탕물 같은 맛이다 큐큐 파파 시원한 물을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다 호흡이 빨라진다 우철! 침착하게!

심호흡을 하고 후욱 후욱 다시 한 번 후욱 후욱 어깨에 힘이 들어 가 있다 어깨를 올리고 힘을 뺀다 추욱 늘어지게 그렇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바람이다 바람이 분다 속도를 늦추지 말고 몸을 앞으로 약간 숙이고 복근에 힘을 주고 하나 둘 하나 둘 바람을 이겨내 하나 둘 하나 둘 총성을 울리게 하고 피 냄새를 나르고 불길을 퍼뜨리는 바람! ‘마하반야바라밀다 심경 관자재보살 바라밀다’ 경을 외우는 소리와 바라 소리가 고막 속에서 뒤엉킨다 하나 둘 하나 둘 ‘할배가 죽을 때 자손은 아무도 없었지 비참하게 죽었군 뭇매를 얻어맞고 죽는 것만 비참한 건 아니지 아무도 지켜봐 주는 이 없는 죽음도 비참한 거야’ 여자의 목소리다 이러니저러니 내 얘기를 하고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 경상남도 밀양면내 1동 75번지 임자년 12월19일생 이우철 아제아제바라아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냐? ‘수천 리 떨어진 타향 땅에서 수만 리 인연을 더듬어 할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할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이 곳을 찾아왔으니 할배여 잠시 이 곳에 들러 해탈법문을 하는 동안 다른 선조는 필요없어’ 저기에 있는 것은 내 손녀딸이 아닌가? 일본에 사는 내 딸의 맏딸이다 곁에 가봐야겠군 금자동아 은자동아 우리 백옥동이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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