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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3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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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성과에 만족하기에는 발전노조 파업의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 컸다. 이왕 비싼 수업료를 낸 바에야 냉정한 평가를 통하여 뼈아픈 교훈이라도 얻어야 할 것이다.
첫째, 노동조합은 이번 파업으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당초 파업의 목적은 민영화 철회였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노조의 요구는 점차 민영화 유보로 바뀌었고 결론은 민영화 수용이었다. 이런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파업권 남용 ´효험´못봐▼
분명 투쟁력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단위노동조합이 전력산업 민영화라는 주요한 국가정책을 파업으로 철회시키려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판단이었다. 민영화 과정에서 야기될 조합원들의 신분 변화와 근로조건의 악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조의 발언권 행사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민영화 반대투쟁이라는 명분을 걸고 교섭력을 극대화하여 단체협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체결하고자 하는 것까지도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월 8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조정으로 단체협약이 확정됐기 때문에 3월 9일 이후의 파업은 힘의 낭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노조가 자신들의 힘을 과신했던 탓에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협상은 힘이 남아 있을 때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이지 있는 힘을 다해 투쟁하고 나면 협상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힘의 대결에 의존하는 경향은 한국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의 행동에서 자주 관찰된다. 파업권은 극도로 자제될 때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이 남용될 때는 오히려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번 확인되었다. 1998년의 현대자동차, 1999년의 서울지하철, 2000년의 대우자동차와 지난해 대한항공 파업 사태는 이러한 교훈을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4년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투쟁능력보다는 대화능력을 키우는 데 좀 더 치중해야 할 것이다.
민영화문제만 하더라도 파업으로 치닫기보다는 민주노총이나 공공연맹과 같은 상급단체가 나서서 사회적 공론화를 모색하고, 정부의 정책 당국자나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서 노동계의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는 것이 옳았다. 대화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 대중투쟁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발전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자신들의 노사관계 관리능력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노사불안은 대부분 쌍방 과실에 기인한다. 지난해 4월 분사 이후 파업에 이르기까지는 최소 10개월의 여유가 있었다. 유능한 경영자들이라면 민영화의 성패나 기업 가치의 크기가 노사관계의 품질에 달려 있다는 점을 쉽게 알았을 것이다. 37일간의 파업을 지속시킬 수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이 결속을 다지고 있는 동안 경영진들은 노사관계 개선을 위해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 많은 국민은 의아해 하고 있다.
▼CEO 노사관리 능력 구멍▼
파업은 끝났지만 기업의 취약한 노사관계 관리능력을 감안할 때 파업 후유증의 치유와 노사불안의 근본적인 해결, 더 나아가 상생의 노사관계 정착이라는 노사합의 정신이 잘 실현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셋째, 정부는 원칙을 지키면서 성실한 대화에 나선다는 것이 노사관계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공권력에 의한 해결이나 원칙 없는 정치적 타협은 급박한 상황을 미봉할 수는 있지만 결국 또 다른 불씨를 남기게 된다. 정부는 노동위원회라는 공적 조정기구를 갖고 있다.조정은 노사간의 대화와 타협으로 쟁의행위를 피하기 위해 제공되는 정부의 매우 중요한 서비스이다. 공권력이나 정치권의 개입보다 조정서비스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영기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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