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문화재 반환…일본 '무성의' 한국 '무관심'

  • 입력 2002년 1월 31일 18시 07분


1910년대 일본의 사업가 오쿠라가 통째로 뜯어가 자신의 저택에 세워놓았던 경복궁 자선당
1910년대 일본의 사업가 오쿠라가 통째로 뜯어가 자신의 저택에 세워놓았던 경복궁 자선당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4일자 최근호에서 ‘일본의 한국 문화재 약탈과 반환 문제’에 관해 보도한 것을 계기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타임은 일본이 19세기 말부터 일제강점기인 1945년까지 한반도에서 10만여점의 문화재를 약탈해갔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이어 2차대전 종전 직후 일본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문화재 반환에 반대했으며 현재 한일 정부간의 공식적인 문화재 반환 협상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사안이라고 지적, 일본 약탈 한국문화재 반환문제가 일본 한국 미국과 관련돼 있음을 강조했다.

▽일본 약탈 문화재, 10만점인가〓타임이 10만점이라고 보도한 것은 국내 문화재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론한 것. 많은 전문가들 역시 10만점은 넘을 것이라고 보고 있으나 구체적인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일본 현지 조사 결과, 현재까지 실물이 확인된 한국 문화재는 약 3만4000여점. 이 중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반출된 것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는 20개국에 7만4000여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약탈 문화재 반환 사례〓1958년 한일 정부간 회담을 통해 삼국시대 귀고리 등 100여점이, 65년 한일협정을 통해 각종 도자기 등 1300여점의 문화재가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이후 반환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가 90년대 들어 조금씩 반환이 이뤄졌다. 96년 경복궁 자선당 건물 유구가 돌아왔고 데라우치 총독이 약탈해간 데라우치문고를 일본의 야마구치여대가 경남대에 기증했다. 99년엔 개인 소장가가 고려 동종을, 2001년엔 역시 개인소장가가 문인석 65점을 한국에 기증했다. 일본에 유출됐다 광복 이후 되돌아온 문화재는 3500여점.

그러나 이 중 정부간 협상에 의한 것은 1600여점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차원의 반환이었다. 특히 90년대 이후의 문화재 반환은 거의 대부분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문화재 반환, 왜 지지부진한가〓타임은 “2차대전 종전 직후 맥아더 장군이 문화재 반환을 반대했다”고 지적하고 “한국은 현재 문화재 반환에 무관심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은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때 경제개발 자금을 지원받는 데 급급해 문화재 반환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극히 일부인 1300점만 돌려받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따라서 타임 보도처럼 정부간 협상을 다시 추진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일본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또한 환수 대상 문화재가 약탈된 것임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화재 반환 협상의 걸림돌이다.

▽앞으로 문화재 반환 협상은 어떻게〓한국 정부는 한일협정 당시 사실상 문화재 반환 노력을 포기한 채 협상을 마무리지었기 때문에 현재 한일 정부간의 반환 협상은 진척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민간 차원의 반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문화재전문가는 “정부간 협상은 명분은 좋지만 현실적인 효과가 없다. 반면 민간 협상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유럽 문화재 반환 사례

타임은 “유럽에서는 나치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논의와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에선 반환에 관한 논의가 별로 없다”고 꼬집었다.

유럽에서의 문화재 반환 협상은 주로 독일과 2차대전 중 독일이 점령했던 국가들(프랑스 등) 사이, 독일과 종전 후 독일에 주둔했던 연합국(러시아 등) 사이에 이뤄지고 있다. 전자는 독일이 약탈한 경우고, 후자는 독일이 약탈당한 경우다.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 중 약 200만점은 2차대전 직후 전후 처리과정에서 원소유국으로 반환됐다. 그러나 독일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던 옛 소련은 그 지역에 보관 중이던 약탈 문화재를 원소유국에 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이만이 트로이 유적에서 발굴한 프리아모스왕의 보물 등 약 20만점을 러시아로 약탈해갔다. 90년대 들어 독일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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