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일본,숨고르는 대국인가 얼룩진 문명국인가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00분


◇ 치명적인 일본/알렉스 커 지음 이나경 옮김/434쪽 12500원 홍익출판사

거품경제를 비롯해 일본의 현실과 장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이 조만간 불황에서 벗어나 다시 발전을 구가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은 이미 추락의 길로 빠져들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국 태생으로 35년간 일본에서 살며 게이요대학을 졸업한 저자는 일본 사회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치명적 증상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잃어버린 일본’(1994)으로 외국인 작가에게 주는 신죠(新潮)국제문학상을 받은 저자는 일본과 태국을 오가며 작가 겸 문화콘텐츠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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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Dogs and Demons’이란 제목으로 출간돼 화제를 모았고 한국에 이어 일본의 유명출판사인 교단샤(講談社)에서 곧 번역 출판될 예정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일본이 지금 귀신, 즉 허상을 쫓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 귀신은 실질 목적이 없는 토목 건설, 독립적 사고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주입식 교육, 문화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구도시의 파괴, 실질 배당금 지불도 없고 국제적 경쟁력도 갖추지 못한 증권회사,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심화시키는 세계화, 헛 지출을 조장하는 관료주의, 아동용에 치중된 영화 산업, 분식 회계로 이루어진 기업의 대차대조표, 환경에 무관심한 환경 당국, 제대로 시험하지 않은 모방 약품의 시판, 은폐와 조작과 거짓말에 불과한 정보, 채소 수송을 위해 세웠다고 하지만 전혀 쓸모 없는 공항 등등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본에 대한 정확한 현실진단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본 도쿄대와 게이요대에서 각각 박사학위를 한 이종훈, 심경호 교수의 찬반 의견을 ‘쟁점 서평’으로 소개한다.

김차수기자 kimcs@donga.com

◆ 애정어린 비판 공감

일본을 현대화 실패 사례로 규정하는 알렉스 커의 논조는 매우 신랄하다 못해 공격적이다. 일본에 대해 향수를 지닌 외국인들이 일본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거나 일본의 예술적이고 효율적인 모습을 예찬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일본은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1965년경에 완전히 발전이 정지됐다고 진단한다. 산업 성장을 위해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전시 행정을 위해 흉물스러운 기념물들을 세움으로써 ‘나라의 영혼을 갉아먹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높은 GNP, 높은 저축률’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생산성이 낮아 주식시장과 은행이 무너지고 국채가 천문학적인 숫자로 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개와 귀신’이다. 저자는 오늘의 일본 엘리트 관료들이 현실에 있는 개를 그리지 못하고 허상에 불과한 귀신을 쫓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엘리트 관료주의가 ‘극단으로 치달리고’ 있는 사실들을 갖가지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일본은 검은 돈을 먹고 번성하는 관료주의가 극히 미묘한 통제 수단을 갖고 아래로는 산업에서부터 위로는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된 모습’에서 멀리 벗어나고 말았다는 것이 핵심적인 주제이다.

언뜻 ‘일본 때리기’의 일종이 아닌가 생각도 되겠지만, 사실 이 책은 일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일본에 희망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평결은 일본에게 ‘본래의 진실한 모습’을 되찾을 것을 촉구하는 조언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대로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요 조언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저자 자신도 분명히,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식의 온정주의적 ‘동지-자본주의’를 장점으로 여겨 관리들이 자유롭고 손쉽게 자금을 전환하여 산업과 사업을 육성하는 방식을 칭찬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관행이 곧 부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관료조직의 합리화, 시민의 행정 감시 및 감독, 국민 의식의 혁명은 일본에서나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숙제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경제구조와 관료조직이 일본이나 마찬가지로 허다한 왜곡과 감추어진 채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자회사의 불량대출, 분식회계, 하도급 관행,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 등등과 관련한 언론 보도들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환경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수익성 추구가 자연을 훼손하고, 공격적인 건설 계획과 ‘광택이 나는 표면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도시와 지방을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똑똑히 알고 있다.

이 책이 일본에 대해 경고한 내용을 되새기면서, 우리야말로 우리의 진실한 모습을 되찾아야 할 때다.

심 경 호 고려대 교수

◆ 서양인의 편견일뿐

‘치명적인 일본’은 책 제목이 말하듯 일본경제가 추락하면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일본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세계가 일본을 말기 암 환자로 진단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일본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인지 일본사회 저변에 현미경을 들이 대 신랄히 비판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은 무책임한 관료가 중심이 되어 경제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정책을 밀고 왔다고 비판한다. 오직 국가 경쟁력과 경제의 효율성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시각이 서양적 편견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서양의 많은 나라들은 수 백년 동안 아래로부터 스스로 오늘의 산업사회를 건설했다. 그러나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역시 정부가 위로부터 법률과 제도로 산업사회를 만들어 압축성장을 거듭해 왔다. 따라서 그 경제와 문화의 구조와 틀이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자본주의 발전 단계를 착실히 밟으며 걸어 온 서양적 시각에서 보면 이상할 것이다.

서양의 자본주의를 시장 합리성 경제라고 한다면 일본과 한국의 자본주의는 서로 비슷한 시장 계획성 경제다. 한마디로 그 운영방식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일찍이 완성된 산업사회에서 자란 서양 사람의 눈으로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동양의 산업사회를 보면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경제 발전 단계를 크게 단축했던 만큼 가치관이 파괴되고 진실과의 괴리가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본과 한국은 정부주도의 시장 계획성 경제이기 때문에 관료적인 성격이 강하며 개발경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환경의 파괴를 면할 수 없다. 저자는 일본이 선(禪)과 다도(茶道)의 문화로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천과 해변의 콘크리트 매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만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시민운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일본의 관료들이 명석하긴 하지만 한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바로 이런점 때문에 오늘날 경제대국이 가능했던 것이다. 절차와 단계를 거치지 않은 비약적인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화와 사상의 갈등구조를 문명사적인 우열이나 고저로 자리매김 한다면 큰 착각과 편견이다.

물론 경제지상주의적인 시스템이 모든 가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은 분명히 중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 환자는 아니다. 다만 크게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압축성장을 해 온 일본과 한국은 수시로 구조를 조정하고 경제를 개혁하여 그 틀을 튼튼히 하고 여기에 어울리는 문화와 사상을 창조한다면 21세기에는 오히려 서양을 리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종 훈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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