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패스 21 '몸통' 밝혀라

  • 입력 2002년 1월 3일 18시 09분


살인범 신분으로 벤처기업을 차린 윤태식씨 집에서 압수된 ‘패스21’ 주식 명부에 국회의원 공무원 공기업 직원과 함께 고도의 윤리가 요구되는 언론사 종사자 25명의 명단이 들어 있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사 종사자 중에는 경제 관련 보도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직원도 있지만 중소기업 벤처 증권을 담당해 패스21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론인도 있다고 한다.

검찰은 주가와 관련된 업무를 다루고 대가성이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언론계 일각의 비리 혐의에 대해 옥석을 가리는 수사를 촉구하면서 이번 기회에 언론인의 주식 투자에 대한 합리적인 규범 제정에 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차명 또는 실명으로 주식을 보유한 공무원과 언론인들의 명단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수사가 곁가지를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주식 뇌물을 받아 구속된 공무원들은 하급직들뿐이다.

윤태식 게이트의 핵심은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국가정보원과 합작해 죽은 아내를 간첩으로 몰고 풀려나 벤처기업을 차려 정관계의 줄을 잡아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 나간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검찰 경찰 재정경제부 정보통신부 철도청 중소기업청 서울지하철공사와 언론사 등 로비의 검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윤씨는 국정원의 지원을 음양으로 받으며 사업을 키워 전직 장관을 회장으로, 전직 국회의원을 고문으로 영입했고 정관계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로비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수사 초기에는 국회의원과 고위직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더니 최근 검찰에 불려오는 것은 100∼200주씩 챙긴 공무원들뿐이다.

고위직일수록 꼬리표가 달린 뇌물은 기피할 것이기 때문에 몸통의 진실은 주식 명부에서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주식 명부에 이름이 나오는 하급 공무원들만 잡아들이고 수사를 마무리해서는 안 된다. 패스21의 급성장을 지원한 배후의 몸통을 밝히지 못하면 이 사건은 이용호 게이트처럼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여야 의원들이 전하는 정초의 민심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이다. ‘게이트’가 하도 많아 어떤 게이트가 누가 관련된 무슨 비리인지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 정도가 됐다. 각종 게이트에 대통령비서실 국정원 검찰 등 국가 권력의 핵심 부서가 줄줄이 연결돼 부패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고질적인 부패를 도려내는 게이트 수사에서 깃털만 뽑아 날리지 말고 몸통의 진실을 밝혀야 바닥 민심을 진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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