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눈비비고 나와보니 봄이 왔네 '아기 너구리네 봄맞이'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29분


◇ 아기 너구리네 봄맞이 /권정생 글 송진헌 그림 /60쪽 7500원 길벗어린이(유아용)

놀이터가 가까운 우리 집은 늘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로 오후 한 때를 맞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매서운 바람이 아이들의 소리를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바야흐로 겨울이 찾아 온 것이다.

겨울은 바깥보다 집 안에서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 아이들에게는 무척 길고 지루할테지만, 대신에 참고 견디어 내는 힘을 기르게 한다. 동식물들도 그렇지 않을까? 땅 속에서 혹은 굴 속에서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노라면 따뜻한 봄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러 낼 거라고, 개울물 소리가 정겹게 들릴 거라고 믿고 있지 않을까?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자연’은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라고 스스로 깨닫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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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작은 생물에게도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권정생 님의 글과, 연필화로 우리 나라 겨울 산의 분위기를 마음껏 표현한 송진헌 님의 그림이 어우러진 책이다.

완만한 기울기의 산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면 고작 집 몇 채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 보이고, 마을 뒤 야트막한 산을 둘러싸고 바닥이 보일 듯 말 듯한 개울이 있다. 그 산 속 곳곳에서는 동물 가족들이 말없이 겨울을 보내고 있겠지.

너구리네 가족도 굴 하나를 차지하고 겨울잠을 자는데 갑자기 잠을 깬 막내 너구리의 울음 소리 때문에 가족이 모두 잠에서 깨어버렸다. 엄마 너구리가 조곤조곤 타이르는 말로 다시 잠을 청하려 하지만, 한번 깬 잠은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쉬이 들지 않는다.

결국 아기너구리 세 남매는 조심조심 굴 들머리까지 나와 바깥 세상을 보는데, 차갑고 새하얀 것이 거센 바람과 함께 아기너구리들이 있는 곳까지 들이닥친다. 아직 눈이 뭔지 모르는 아기너구리들은 동그래진 눈으로 좀 더 먼 곳을 바라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잎을 뽐내던 단풍나무, 은사시나무, 산사나무도 모두들 잎을 떨군 채 조용히 기다리고 서 있다.

이제서야 겨울엔 잠을 자야한다는 걸 깨달은 아기너구리들. 봄 맞을 꿈을 꾸면서 잠이 든다. 어느 새 개울물이 불어나고 버들강아지가 하얀 솜털 꽃을 피우며 봄이 찾아왔다! 봄은 온통 연둣빛으로 아기 너구리네 가족을 반갑게 맞이 한다.

연필로 그린 회색 빛 겨울 산은 텅 빈 놀이터를 보는 것 만큼이나 쓸쓸하면서도 우리 나라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겨움과 포근함을 준다.

오혜경(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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