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김장철 채소값 폭락…농민 시름

  • 입력 2001년 11월 7일 18시 42분


6일 오후 10시20분경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의 산지에서 올라온 배추와 무 경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날 경매에 나온 물량은 5t 트럭 40여대분. 배추 중간상인 김모씨(37)는 “배추와 무 가격이 워낙 떨어져 농민들이 출하를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바람에 올해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 나온 물량의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군에서 온 농민 권모씨(43)는 “종자값이라도 건지겠다는 생각에 직접 트럭을 몰고 올라오긴 했지만 배추농사 3만평 지어 빚만 2000만원 지게 생겼다”며 한숨을 지었다.

강원 홍천군에서 배추농사를 짓고 있는 이모씨(52)는 “차라리 기온이 며칠간 3, 4도 이하로 뚝 떨어져 전국의 배추재배 농가 절반이 냉해로 농사를 망쳐야 나머지 농가들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무 배추 등 채소값이 지난해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져 전국의 재배 농민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얼마나 떨어졌나〓7일 광주 북구 각화동 농산물도매시장에 따르면 배추의 경우 ㎏당 단가가 80∼26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20∼500원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졌다.

무도 ㎏당 130원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60원에 비해 절반 정도 떨어진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김장김치의 양념용으로 쓰이는 대파는 ㎏당 단가가 350원, 쪽파는 12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대파는 16%, 쪽파는 60%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마늘의 경우도 ㎏당 2580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14% 정도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고추는 올 작황이 부진해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마른 고추 가격이 ㎏당 2300원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다소 떨어진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 경북 안동시에 따르면 이 지역 농산물도매시장과 재래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배추 가격은 포기당 200원선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0∼600원에 비해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산지가격도 300평 기준 5t트럭 1대분에 80만원으로 최저가격 92만5000원을 크게 밑돌고 있으며 무도 생산비조차 안되는 90만∼100만원에 팔리고 있다.

▽막막한 재배 농민〓전남 나주시 남평읍에서 배추와 고추 등을 재배하고 있는 채모씨(44)는 “매년 김장철을 앞두고 부르는 대로 값을 받았으나 올해는 김장철이라고 해서 판매가 늘어나기는커녕 재배한 채소를 어떻게 팔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6000평에 배추를 재배했다는 김성모씨(48·경북 안동시 도산면)는 “출하가격이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해 아예 손을 놓고 있다”며 “인건비는커녕 영농비조차 건질 수 없어 지금 같아서는 당장 갈아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폭락하면서 거래도 주춤한 상태. 올해 219㏊에 배추를 재배한 경북 안동지역과 인근 청송, 영주, 의성 등지에서는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민을 상대로 한 중간상인들의 밭떼기 거래조차 끊겼다.

청송군 관계자는 “돈이 급한 일부 농민들이 도매시장에 싣고 갔다가 운임도 건지지 못한 채 되돌아오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가격폭락 원인과 대책=이같은 현상은 전국적으로 풍작인 데다 예년에 비해 늦게 심은 고랭지 배추와 무가 아직 출하되고 있으며 추석이 지나면서부터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또 여름과 겨울에도 자랄 수 있는 우수 품종이 개발됐고 최근 김치냉장고가 많이 보급되면서 김장철 자체가 사라져 김장수요가 감소하는 것도 가격 폭락의 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농림부는 배추 값 하락을 막기 위해 이달 말까지 전국에서 배추 7만t을 ㎏당 65원에 수매해 가격을 안정시킬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농협 전남본부도 2001년산 가을배추 계약재배 물량 가운데 1500t을 10일부터 산지의 농협을 통해 조기 수매하기로 했다. 농협은 상품(上品) 이상 배추에 대해 ㎏당 최저보장가격인 65원을 지급키로 했다.

<현기득기자·광주〓정승호기자·안동〓이혜만기자>rat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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