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정부 부양책 문제점]증시대책 되레 시장왜곡 우려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45분


정부가 미국 테러사태 이후 잇따라 내놓은 증시대책이 주식시장을 오히려 왜곡시키고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 ‘단기처방’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측은 “외부쇼크에 얼어붙은 투자심리를 살리고 증시를 떠받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증시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나친 증시개입에 따른 관치(官治)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다. ▽시장효율 떨어뜨리는 대책 잇따라〓시장원리와 동떨어지는 대표적인 대책이 ‘주식 모으기 운동’ 펀드 조성. 주가폭락을 막기 위해 투자자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라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지시 후 단기간에 급조된 금융상품이다.

이 펀드는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 전 회장이 간접투자 바람을 일으킨 ‘바이코리아펀드’와 비슷하다. 시장원리보다는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한다는 면에서 주가하락시 적잖은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유자금이 남아도는 금융회사들을 한데 모아 제2의 증시안정기금을 만들려는 비상조치도 이미 없어진 증안기금을 다시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과거 증안기금은 주가를 떠받치는 역할도 제대로 못한 채 개미투자자들의 판단만 흐리게 했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증안기금 때문에 상장기업뿐만 아니라 증권회사들이 온통 멍이 들었는데 청산작업도 채 끝나기 전에 제2증안기금을 만든다면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연기금 동원 등도 문제 많아〓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있지만 정부가 나서 연기금을 주식투자에 밀어 넣는 것은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떨어뜨리는 구태의연한 발상으로 꼽힌다. 이런 발상은 연기금 돈을 정부의 ‘쌈짓돈’쯤으로 생각하는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아직 구체적 정책으로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검토 중인 주가변동폭 축소조치도 논란이 많다. 단기폭락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가격변동 제한을 점차 없애나가는 선진국의 흐름과는 거꾸로 가는 대책이기 때문.

이밖에 증권 투신 은행 보험 등 기관투자가에 주식을 팔지 말도록 창구지도를 함으로써 순매수원칙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증시거래가 줄어드는 이상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계에 이른 인위적 수급조절〓정부가 마련한 비상조치들이 주식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한국 증권시장의 규모가 너무 커졌고 투자기법도 다양화됐다는 시각이 많다.

증시에서의 국내 기관투자가 비중이 10%를 조금 넘는 현실에서 정부가 행정지도 등을 통해 ‘만만한 국내 기관투자가’의 손발만 묶는다면 투자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큰 외국인만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강신우(姜信祐) 굿모닝투신운용 상무는 “대규모 자산을 굴리는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정부의 단기조치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며 “주식시장은 펀더멘털(기본요인)에 따라 움직이므로 단기수급 조절보다는 거시 경제정책을 잘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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