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라엘리안과 판도라 상자

  • 입력 2001년 9월 9일 18시 55분


라엘이라는 환상가가 서울을 다녀갔다. 그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으며 종말 없는 인류의 미래를 인간복제에서 찾고자 한다. 인간복제회사인 크로나이드사를 차려 놓은 그는 한국에서 인간복제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인간복제를 신청한 한국인이 8명, 인간복제 대리모 신청자와 인간복제를 도울 한국인 과학자도 몇 명 확보했다는 것이다. 일찍이 소설가 헉슬리가 꿈꿨던 ‘멋진 신세계’가 라엘리안에 의해 한국 땅에서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복제를 통해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지만 그로 인해 야기될 새로운 재앙 앞에 인류는 다시 두려워해야 할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라엘리안들은 히틀러를 국제전범법정에 세우기 위해 복제해야 한다고 떠든다. 히틀러 복제는 과학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복제된 히틀러에게 때늦은 단죄라도 가함으로써 끝까지 정의는 세워야 한다는 인류 보편의 염원을 충족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제2, 제3의 히틀러 복제는 어찌할 것인가. 인간 잡종 키메라 클레오파트라의 주문 생산은 또 어찌할 것인가.

▷세계의 높은 지성들은 인간복제가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대재앙의 시발로 내다본다. 마치 제2의 바벨탑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여는 날 세상은 겉잡을 수 없는 악마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간복제가 인류 재앙의 시발이라면 생명윤리의 기본법조차 없는 한국 땅은 정신적으로 아마존 정글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정글 속에서 라엘리안은 활보하며 판도라의 상자 뚜껑에 촉수를 내밀고 있다.

▷문제는 인간복제술의 손이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눈에 마치 미다스의 황금의 손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바이오기술(BT)산업을 통한 국가경쟁력 논리도 그 중 하나이다. 경제 성장이 최상의 목표가 된 나라는 어딘지 장래가 없어 보인다. 인종과 인권을 논하는 국제회의에서 패퇴하는 미국을 보면 미국식 경제 세계화가 결코 인류 문명의 척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베를린에서 만난 독불 정상이 미국식 세계화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황금보다 더 귀한 그 무엇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으리라.

김일수 객원 논설위원(고려대 교수·법학)ilsuki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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