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브스쿨]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 입력 2001년 7월 26일 18시 22분


질문을 해도 꼭 치고받는 것만 물어댄다.

“선생님, 김두한하고 시라소니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이소룡과 황비홍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요?”

솔직히 얘기하면 그건 나도 궁금하다. 사실 싸움구경만큼 재미난 게 세상에 또 있을까. 언젠가 TV에서 풍산개와 진돗개의 싸움을 방영했다는데 그걸 못 본 게 지금까지 후회된다.

남학교에 있다보니 하루도 쌈 구경 안하는 날이 없다. 물론 싸움인 지, 장난인 지 모를 때도 종종 있지만.

하여간 가만히 공부하는 놈을 괜히 툭 치고 가질 않나, 잠자는 놈 뒤통수를 때리지 않나, 하다 못해 멀리 떨어져 있는 놈에겐 종이뭉치나 지우개라도 던져야 속이 풀리는 녀석들이 바로 남학생 놈들이다.

어디선가 ‘퍼퍽!’ 소리만 났다 하면 수업종이 울려도 후닥닥 현장(?)으로 모여들기 바쁘고, 누가 누구랑 붙었느냐, 어떻게 결판났느냐를 자신의 성적보다 더 궁금해하는 녀석들이 바로 남학생들이다.

그리고 그런 쌈 주위를 맴도는 전설 같은 이야기.

“17 대 1이었어. 이 상처, 이 상처가 바로 그때 싸우다 생긴 거 아냐.”

“근데 넌 그 17명 중 하나였다며?”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문학이었고, 그들만의 신화였다.

제 아무리 무서운 선생의 회초리도, ‘창 밖에 예쁜 여자 출현!’이란 쇼킹뉴스도 조는 아이들을 깨우지는 못한다. 하지만 “싸운다!” 한 마디면 아이들은 모두 용수철같이 튄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쌈 안하나 하는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싸움’은 남학교에서 ‘남자답다’는 의미의 또 다른 단어다.

그러나 녀석들의 주먹이 여물대로 여물었다는 게 문제다. 한 방 된통 얻어맞았다간 ‘뚝!’ 최소한 2주다. 때린 놈의 주먹이 바스러졌다 하면 알 정도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 둔 것이 바로 권투다.

“싸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놈이 있다면 나한테 와. 싸우게 해주겠어. 어떻게 싸우느냐. 반 아이들 모두 빙 둘러앉은 가운데 정식으로 인사하고, 글러브 끼고 붙는 거야. 알겠어?”

스포츠는 ‘쇼(?)’라 심심하다고 생각해선가, 아니면 애들 앞에서 쥐어터질 것 같아 창피해선가. 멍석을 깔아주니 아직까지 신청한 놈은 하나도 없다.

하긴 진짜 신청을 해도 문제다. 무엇보다 장비를 돈주고 사야 하는데, 글러브에 헤드기어까지 장만하려면 비용이…. 그리고 선생이 애들 가르칠 생각은 않고, 게다가 쌈 나면 말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쌈이나 시키고 말이야, 말이야.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한 놈이 씩씩거리며,

“선생님! 저 ××와 한 판 붙고 싶습니다!”

“왜에?”

“자식이 저보고 ‘재수 없다’는 거예요!”

오예! 여러분, 빨랑빨랑 서두르세요! 돌아오는 금요일, 우리 학교에서 ‘빅 매치’가 열립니다.

전성호(41·휘문고 국어교사)ohyeah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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