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한국은 과연 아르헨과 다른가

  • 입력 2001년 7월 16일 00시 35분


요즘 월가의 경제분석가들은 섣부른 분석과 전망을 극히 꺼린다. 미국이외의 신흥시장에 대해선 더욱 그렇다. 미국의 신경제 전망도 못하는 형편인데 정보도 부족한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전망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침 미국 월가를 방문중인 국내 증권회사 전문가가 e메일을 보내왔다. 세계 곳곳에서 금융위기가 터지고 있는데 월가의 분석가들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냐면서 말이다.

“이곳 월가의 투자가들은 한국이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자동차 제지 등 구경제가 비교적 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치일정과 현 정부와 언론의 대치상태에 관심이 많다.”

그는 월가의 분석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의상 던지는 입에 발린 말인지는 모르지만 다소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엔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국이 구경제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점과 내년의 대통령 선거 등에 관심이 많다는 지적이다.

구경제가 강하다는 것은 그의 설명이 없더라도 이해할 만했다. 미국의 신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예컨대 싱가포르는 구경제가 거의 없는 탓에 이미 심각한 경기 침체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많다는 건 왜일까. 한국이 이미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경험한 민주국가라는 사실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의문은 최근 다시 터지고 있는 아르헨티나 금융위기를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르헨티나는 여소야대인데 10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은 선거에만 정신이 팔려 정국이 극도로 혼란한 실정이다.

흔히 중남미에선 ‘정치적인 경기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 현상이 뚜렷이 나타난다고 한다. 집권당은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선심정책을 쓰느라 재정적자가 커져 위기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거의 다 외환위기가 일어났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선거를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을 어기고 재정지출을 늘리다가 IMF의 자금지원이 중단되고 환란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브라질에서도 1985년 출범한 정부가 대중적인 지지기반을 얻기 위해 노동자의 권익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공무원 임금을 올리는 선심정책을 펴다가 87년 모라토리엄에 이르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에도 대통령선거가 있지 않았는가. 그해 선거를 앞두고 7월에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그랬다. 정부와 외국 투자가들은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다르다’고 했다. 외환보유고가 훨씬 많고 국제수지도 흑자를 내고 있다는 게 주된 근거였다.

그러나 월가의 투자가들은 한국이 과연 달라졌는지 확인하려 한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벌써 이해집단의 이기주의적인 요구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또 정부가 선심성 대책으로 쉽게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닌지 말이다.

박영균<금융부장>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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