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베스트셀러 조작

  • 입력 2001년 7월 12일 18시 29분


베스트셀러는 시대를 반영한다. 사람들의 독서경향을 통해 그 시대의 주된 관심사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인 것은 아니다. 간혹 신문에 보도되거나 서점에 붙여놓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고 책을 샀다 실망한 적이 없지 않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떻게 이런 책이 목록에 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베스트셀러보다 오랜 기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를 선택하라고 충고한다.

▷요즘 출판계가 베스트셀러 순위조작 문제로 시끄럽다. 많은 출판사들이 자사가 출판한 책을 순위에 올리기 위해 아르바이트생 등을 동원해 책 사재기를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서점측과 ‘모종의 거래’까지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급기야 단행본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가 나서 앞으로 사재기를 하다 적발되는 출판사는 명단공개 제명 등 강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회원사에 통고했다. 그러나 법적 강제성도 없는 회원사 자체 징계가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다.

▷이런 판국에 “베스트셀러 집계시 출판사와 서점간에 온갖 구시대적 작태가 저질러지고 있다”고 한 출판사 대표가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한 출판전문지에 실명으로 기고한 글을 통해 “베스트셀러란 단지 자사 책의 구입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할인율 인하, 무료증정, 담당자선물, 향응, 인간적 관계, 광고, 인맥 등이 총체적으로 연결돼 판가름난다”고 주장했다. 베스트셀러 집계가 고무줄 집계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다. 출판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면서도 말하기 꺼렸던 부분을 확인해준 셈이다.

▷출판사나 서점은 좀 높여 말하면 ‘지성의 향도(嚮導)’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 이들이 독자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긴커녕 상업적으로 오염돼 독자를 오도하고 있었다니 분노가 치민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다 해도 ‘마음의 영혼’인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곳까지 이처럼 썩어서야 될 일인지 안타깝기도 하다. 하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관이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유독 출판계에만 깨끗함을 요구하는 게 무리일지도 모른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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