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뒷골목의 셔틀버스

  • 입력 2001년 7월 2일 18시 41분


백화점 셔틀버스의 운행을 금지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대한 백화점 업계의 위헌소원 청구는 헌법재판관 9명 중 1명이 회피(기권)했고 합헌과 위헌 의견이 4 대 4로 갈렸다. 어떤 법률에 대해 위헌결정을 하려면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이 청구는 기각됐다. 거꾸로 백화점과 이해가 다른 시내버스 업계가 셔틀버스의 운행을 허용하는 법률에 대해 위헌소원 청구를 했더라면 6명 정족수를 못 채워 기각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팽팽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가치판단이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셔틀버스를 둘러싼 논쟁에서는 과연 누가 약자인지 혼란스럽다. 중소상인이나 시내버스 업체들이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에 비해 약자이지만 소비자들에 대해서는 조직력 로비력이 훨씬 센 강자이다. 백화점 셔틀버스를 금지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된 경위를 살펴보면 소비자와 중소상인들의 관계에서 누가 약자인지 확연히 드러난다.

▷미국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도 시의원들이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식료품 가게 주인들의 이익을 위해 물건값이 싼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는 것을 막는 일을 한다. 한국에서도 지역구 의원들은 동네슈퍼마켓 의류가게 문구점 주인은 숫자가 많으니 이들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이 활발하게 법률개정 청원활동을 벌인 끝에 여야의원 54명이 발의한 셔틀버스 금지 법안은 2000년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실질적인 정책 결정이 국회의원과 압력단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정치과정의 ‘뒷골목’이라고 한다. 뒷골목의 정책결정은 공적인 감시가 잘 미치지 않아 정치인과 특수이익이 결탁하기 쉽다. 백화점이 있는 서울 도심과 신도시는 셔틀버스 운행이 중단돼 지난 주말 교통대란을 치렀다. 대체교통수단의 부재로 당분간 고통이 지속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입법기능을 견제하는 고유의 책무를 지니고 있다. 이번에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신도시 주민들의 이기주의 감정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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