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히야>를 보면서 느끼는 美의 딜레마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21분


과일음료 <히야> 광고. 아름다워지기 위해 손쉽게 성형수술을 할까? 정석을 걸을까? 이것은 누구나 겪는 딜레마다.

성형외과를 찾은 정선희.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한 톤으로 의사선생님에게 부탁한다. '한고은처럼 고쳐주세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마치 한고은이라도 된 것처럼 흐뭇해하는데.

어랏! 실제로 한고은이 등장한다. 히야~히야~ 감탄사와 함께 등장한 그녀는 붉은 색 원피스를 입고 쭈욱 빠진 몸매를 뽐내며 요염하게 걸어온다. 놀란 정선희가 '고은아, 여긴 웬일이야?' 물어온다. 너처럼 예쁜 애가 성형외과엔 왜 온대니.

그러나 어머머머 이게 웬일. 한고은의 입에서 전원주의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오는게 아닌가. '으하하하 나 원주야 전원주' 호들갑스럽게 박수치는 제스처까지 똑같다. 으아. 어떻게 이런 일이?

자, 전원주가 한고은이 된 천기누설에 버금갈 비법을 공개한다. 예뻐지고 싶니? 과일이랑 친해 봐.

이 광고 깬다. 한고은의 미모에 전원주의 쇼킹한 목소리를 조합한 엉뚱한 발상이 가히 그로테스크하다. 이 기괴한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혼란스럽다. 코믹하면서 엽기적이고 웃음이 터지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이 광고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보여준다. 우리의 미에 대한 갈망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그러나 설정된 미적 욕망은 팽팽한 긴장감을 슬쩍 비껴선 채 느슨하게 풀려있다. 즉, 너무 황당해서 현실감이 없다.

정선희가 보여주는 역할은 칼 대면 한 단계 '업'될 수 있는 전형을 제시한다. 썩 미인은 아니지만 살짝 손보면 미인대열에 낄 수 있는 얼굴이다. 하지만 칼 대지 않고 예뻐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거다. 과일 먹으면 예뻐진다니 수술을 포기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한고은은 어떤가 하면 구체성이 결여된 미인의 전형이다. 그녀는 돋보이는 미모를 가졌고 심심찮게 스캔들이 터지지만 실상은 유령 같은 존재다. 이렇다할 성격과 캐릭터가 없는 '미녀스타'다. 그렇기 때문에 전원주의 목소리 더빙이 가능하다. 여기서 그녀는 완벽한 외형만을 빌려줄 뿐이다.

과일 먹고 예뻐진다는건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정석이다. 그에 반해 성형수술은 지름길이다. 게다가 성형수술에 대한 심리적인 억압이 완화된 요즘에는 일종의 자기개발로 인식되고 있다.

이영자의 지방흡입술이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일종의 배신감이다. 살을 빼는데 있어 운동과 달리기는 누구나 인정하는 정석이다. 하지만 정석을 따르는 길이 제일 어려운 법이다. 정석의 길을 택해 신화적으로 살을 뺐으면 그 과정 또한 투명하길 바라는 것이다. 아무런 흠집 없이 완벽하게 정석의 길을 부활하려던 이영자의 욕심이 일을 그르친 셈이다.

전원주가 한고은이 된다는 것. 이 엽기적인 욕망. 이건 성형수술로도 불가능하고 과일을 먹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광고는 '뻥'이다. 톡 까놓고 뻔뻔하게 만든 허위광고다. 바로 그점, 도저히 불가능하다는걸 인정하기 때문에 코믹광고로서 통한다.

'히야를 마시면 한고은이 됩니다'라고 말하는건 애교섞인 과장이다. 누구나 용인해준다. 이영자의 회한섞인 눈물과 초라함은 냉정한 현실이지만,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전원주의 목소리는 지극히 비현실이므로.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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