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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4월 30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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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무작정(?) 미국으로 갔을 때 팬들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봤을 때 더 이상 이룰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만 한국 남자골프의 자존심이 있는 만큼 망신만이라도 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경기때면 상위권보다는 컷오프 탈락을 걱정하며 마음을 졸일 뿐이었다.
“아무리 해봐야 중하위권 아니겠느냐”는 것이었고 더 이상의 기대는 부질없는 것이라는 ‘공감대’마저 있었다.
조금이나마 한국 남자골프의 위상만이라도 올려줬으면 하는 것이 팬들의 솔직한 심정이었으리라. 특히 ‘한국 낭자군’이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 이름을 올리는 미국 LPGA에 비교하다보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으니…. 그게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를 보는 ‘현주소’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할 만큼 됐다. 어느새 미국PGA 투어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정상급 프로로 자리매김한 그를 보게 될 줄이야.
‘필드의 타이슨’ 최경주. 그의 변신이 놀랍기만하다. 우승만을 ‘최고선’으로 여기는 ‘국내 풍토’지만 미국 PGA투어대회 공동 4위라면 실로 대단하다.
이날 최경주는 드라이버샷과 쇼트게임, 퍼팅의 3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경기 운영과 정신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완숙된 모습을 보였다.
더 이상 대회 초반 맥없이 무너지던 그가 아니었다. 더욱이 3라운드 공동 19위에서 마지막날 15계단이나 상승한 4위라니. 과연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일까.
‘이제야 껍질을 깨고 새로 눈을 떴다’는 평가다. 퍼팅과 코스 매니지먼트만 가다듬으면 우승도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낯선 미국 생활과 코스에 적응했으며 정상을 노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샷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데다 초반 상승세로 여유까지 생겼다는 것.
무명에 가까운 그가 지금은 미국 현지 언론 및 골프 팬, 동료 선수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날 중계를 한 미국 CBS의 해설자는 “최경주를 주목해야 한다”고 반복하며 “그는 올해 단 두차례 밖에 컷오프 탈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올 시즌 280.4야드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로 37위를 달리고 있는 최경주. 그는 이번 대회에서는 20야드 이상 더 날린 305.6야드의 호쾌한 장타를 과시했다. 약점으로 지적된 퍼팅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28.45개였던 시즌 평균 퍼팅수도 26.5개로 뚝 떨어졌고 게다가 4라운드 때는 평균 퍼팅수가 23개에 그쳤다.
경기가 끝난 뒤 최경주는 골프 채널 등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렸다. 우승자를 능가하는 스포트라이트였다.
그는 통역 없이 “게임이 많이 편해졌고 기분도 아주 좋다”고 말했다. 그는 루키 시즌이던 지난해 다른 선수의 눈치를 보며 주눅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동료들이 나를 의식하고 경계하는데 이제 그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경주의 ‘무한 질주’. 팬의 기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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