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이래서 명작]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입력 2001년 4월 17일 10시 25분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되지를 않아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당신을 열렬하게 찬미하고 사랑하는지 말하게 해주세요."

◇ 우물 속에서 세계를 보다

《오만과 편견》, 《지성과 감성》, 《에마》 등의 고전적인 소설들을 남긴 작가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 햄프셔 지방의 작은 마을 스티벤튼에서 한 시골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제인은 몇 군데 학교를 다녔지만 불과 11살 때까지 정식교육을 받았을 뿐이고, 바스나 초튼 등 다른 영국 남부지방의 마을에서 살기도 했지만 1817년 마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장기 동안 거의 자기 고장을 벗어나지 않고 조용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런 제인이 영국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작가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평단을 지배하던 비평가 F.R. 리비스는 영국소설의 전통을 추적한 《위대한 전통》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위대한 영국소설가는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그리고 조셉 콘래드"라고 단정하며 글을 시작하였다. 리비스의 이같은 평가에도 드러난 것처럼, 제인 오스틴에서부터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은 1811년에서 1817년까지 모두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은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현실적으로 묘사해내고 도덕적 성찰과 이해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이렇다 할 정식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인생 경험의 폭도 좁은 여성이 어떻게 그같은 위업을 이룰 수 있었을까? 물론 오빠들 가운데는 옥스퍼드에 다닌 후 목사가 된 사람도 있지만, 제인은 집에서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길렀다. 당시 아버지의 서가에는 약 5백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인은 이 당시 나온 장편소설들, 특히 사무엘 리차드슨이나 헨리 필딩 같은 18세기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읽었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그런 것처럼, 제인은 이처럼 독서를 즐기고 주변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총명하고 활기찬 여성이었다. 두어 번의 연애사건이 있었으나, 두 번 다 약혼까지 가지 못하고 결국 독신으로 평생을 지내게 된다. 10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지만, 본격적인 소설쓰기는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 오스틴과 영국

제인 오스틴이 묘사하는 세계는 당대의 영국 시골의 소지주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반경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중심이 되는 소재는 집안간 남녀간의 사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된다. 《오만과 편견》도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비롯해 모두 네 쌍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룬다.

오스틴의 소설세계가 이처럼 협소한 주제와 배경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오스틴이 작품활동을 하던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걸치는 기간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시기는 유럽에서 다름아닌 혁명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격변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제인이 십대였던 1789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은 이후 유럽 전부를 나폴레옹 전쟁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제인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던 바로 그 시기에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도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었으며 산업혁명이 일어나 계급간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그런데 오스틴의 소설 속에서는 군인들이 나온다는 것 외에 이 같은 변혁과 갈등의 표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군인들도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애의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이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인 오스틴은 비록 큰 규모의 사건들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가장 잘 알았고 깊이 이해했던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고 깊이있게 그려내었다. 적령기의 여성이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부딪히게 되면, 당사자가 되는 남녀뿐 아니라 그 문제를 중심으로 가족 성원간의 관계, 부모의 갈등, 이웃들의 태도, 사회적인 관습 등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더 나아가서 신분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당대의 계급문제가 끼여들게 된다. 오스틴은 바로 이 같은 일상적인 현실 속에 나타나는 삶과 사회의 문제를 면밀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당대의 사회를 어떤 역사가보다도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한계들을 폭로하고 인간의 편견과 우매함을 날카롭게 풍자하였다. 이를 통해 도달한 깊은 인간이해와 도덕적 관심 때문에 리비스는 이 여성작가를 위대한 전통의 첫머리로 꼽고 있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19세기초의 작가이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최근에 새로 제작한 《센스 앤 센스빌리티》와 《에마》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기도 하였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딸만 다섯인 베네트씨의 저택 이웃에 돈 많고 잘생긴 총각 빙리씨가 이사온다. 적령기의 딸들을 둔 어머니는 벌써부터 야단이고, 맏이 제인과 둘째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딸들도 다들 마음을 설렌다. 이윽고 빙리씨가 이웃들을 초청하여 연 첫 무도회날, 그 자리에는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가 나타난다. 다아시도 총각인데다 친구인 빙리보다도 훨씬 더 훤칠하고 부유한 젊은이인지라, 처음에는 모든 사람의 시선과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그의 매너는 친구와는 반대로 너무나 오만하여 미움을 샀고, 더구나 엘리자베스에게 참으로 무례한 행동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편견을 안겨주었으니........

The more

◇ 글쓴이 윤지관

덕성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버클리 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영미문학연구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활발한 평론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민족현실과 문학비평》(실천문학사, 1990)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창작과비평사, 1995) 등을 출판했으며 그 외 많은 역서를 낸 바 있다.

<북코스모스 가이드북 필자 E-mail: jkyoon@center.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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