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뉴스]노모, ML 진출 이후 2번째 노히트 노런

  • 입력 2001년 4월 5일 17시 18분


4월3일. 볼티모어 캠든 야드에서 역사가 창조됐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가 캠든 야드 개장 이래 처음으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이날은 노모가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첫 등판한 날이었다. 9회말 1아웃 상황. 오리올스의 마이크 보딕이 친 공은 센터와 2루수&유격수 사이에 떨어지는 텍사스 안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루수 랜싱이 달려가 다이빙 캐치를 하면서 노히트 노런은 그대로 살게 됐다.

마지막 타자는 들라이노 드쉴즈. 볼티모어의 홈팬들 마저 노히트를 기대하는 듯 환호를 보냈다. 드쉴즈가 친 공은 좌익수 트로이 올리오리에게로 날아갔고 올리오리는 쉬운 뜬 공을 잡아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레드삭스의 팀 동료들은 마운드에서 환호하던 노모에게 달려가 축하해줬고 볼티모어 팬들은 '노장의 부활'에 박수를 보냈다.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마지막 공은 노모에게 넘겨졌다.

지난 95년 LA 다저스에서 데뷔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미 전국을 '노모 열풍'으로 몰고 갔던 노모는 당해에 신인왕에 오른 바 있다. 이듬해인 96년에도 호성적으로 다저스의 에이스로 떠올랐던 그는 이후 노쇠의 기미를 보이면서 조금씩 퇴보하기 시작했다.

97년에 메이저리그 진출 3년도 채 안된 444.2이닝만에 5백 탈삼진을 기록해 메이저리그 기록을 세웠던 노모는 LA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난 후 98년, 뉴욕 메츠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메츠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그는 99년 밀워키를 거쳐 2000년 시즌에 타이거스에서 뛰었다.

타이거스에서 시즌 초반 부진했던 노모는 9월에 3승1패, 방어율 3.34를 기록하는 부활투를 했다. 9이닝당 노모의 탈삼진수는 8.5개로 리그에서 3위에 올랐다. 타이거스 구단은 그러나 2001년 시즌의 5백50만달러에 달하는 옵션 계약을 포기해 노모는 자유계약 선수가 됐다.

자유계약 선수가 된 이후 타이거스의 구단주는 "노모가 타선의 지원을 받았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렸을 것이다. 그는 자유계약 선수로 나온 투수중 몇 안되는 좋은 선수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동안 노모를 지켜봤던 레드삭스의 댄 두켓 단장은 자유계약 선수가 된 노모를 픽업 했다.

두켓 단장은 "노모는 꾸준한 피칭을 했다. 여전히 메이저리그 톱 클래스의 투수라고 본다"고 새로운 선발투수를 치켜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두켓 단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한 관계자는 당시 ICCsports.com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댄 두켓 단장이 퇴물 투수에게 4백50만달러를 투자한 것은 모험이다. 소식을 듣고 많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두켓 단장은 가능성 없는 선수를 데려다 잘 활용하는 능력이 있다. 노모에 기대를 걸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과거 호세 오퍼먼을 거액에 영입했을 때 미국내 전 언론은 두켓 단장을 정신 나갔다고 비난 했지만 오퍼먼은 시즌이 시작되자 마자 맹타를 휘둘러 비난의 열기를 썰렁하게 만든 바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두켓 감독의 천재적인 감각이 '제2의 노모 매니아'를 창조케 한 것이다.

글: 「인터뉴스 리포트」 최주용 기자

http://www.icc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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