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아름다운…' 잘 만든 스릴러 영화같은 심리극

  • 입력 2001년 3월 27일 19시 14분


연극 ‘아름다운 여인의 작별’(원제 The Beauty Queen of Leenane)은 변덕과 심술로 가득한 70대 노파 맥(김금지)과 그의 딸인 40대 노처녀 모린(정경순)의 애증을 다룬 작품이다.

이들의 관계는 모녀간에 흔히 빚어질 수 있는 ‘애증’의 차원을 넘어 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머니는 딸이 파토(이승철)와 사귀자 ‘화냥년’이라고 욕하는 것도 모자라 정신병원 입원 경력을 폭로한다. 딸은 자신에게 매달리는 엄마에게 연민을 갖다가도 사사건건 앞 길을 막자 급기야 엄마에게 살의(殺意)까지 느낀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마틴 맥도나(31)의 이 작품은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연상시킨다. 맥의 손에 생긴 화상의 비밀과 파토의 동생이 탐내는 부지깽이 등 극중 복선은 모녀의 입씨름이 언제 어디서 끔찍한 결과를 낳을지, 오싹한 긴장감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먹고 살기 위해선 이 땅, 아일랜드를 떠나야 한다”는 파토의 대사로 상징되는 아일랜드의 비극이 드리워지면서 단순한 여성 심리극 이상의 깊이를 보여줬다.

파토는 결국 맥의 방해로 모린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선택하게 되는데 모린은 이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엄마의 모습을 닮아간다. 이런 모린의 비극적인 모습은 슬픈 아일랜드인의 또다른 자화상이다.

김금지 정경순 이승철 등 중견 연기자들의 안정감있는 연기와 연출자 강유정의 성실함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아쉬운 것은 맥의 내면이 다소 밋밋하게 그려져 살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이다.

극작가 맥도나는 영국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97년 영국 런던의 웨스트앤드에서는 맥도나의 작품 4편이 동시에 공연된 적도 있다. 이는 셰익스피어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서울 정동 제일화재쎄실극장. 4월15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수 오후 3시 공연있음), 토 오후 3시 6시, 일 오후 3시. 2만원. 02―766―1482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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