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미정상회담 이후…이정빈 외무에 듣는다

  • 입력 2001년 3월 13일 00시 04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간 한미정상회담을 놓고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고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한나라당은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수정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무엇이 어떻게 됐길래 이처럼 상반된 평가와 해석이 나오는 것일까. 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을 12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 보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라면 어떤 점인지, 아쉬웠던 점은 없었는지.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목적은 부시대통령에게 남북문제와 북한에 대한 시각 등을 설명해서 대북정책을 입안할 때 참고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이 우리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을 지지하고 김대중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 것 등이 큰 성과다. 반면 아직 미 행정부의 한반도라인이 구성되지 않아 구체적인 합의를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김대중정부와 부시행정부의 대북 인식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사전에 이를 좁히는 노력을 좀 더 할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부시대통령은 ‘북한 정권에 다소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한미 양국이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걸림돌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은 대북관계를 추진해 나가는데 그런 의구심이 있기 때문에 검증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북정책도 냉정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큰 테두리 안에서 남북간에 포괄적 상호주의를 적용하며, 교류협력과 긴장완화를 통해 평화공존을 유지하고자 한다. 미국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와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앞으로 한미간 인식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미 및 한미일간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인식을 좁혀나갈 것이다. 김대통령이 미국을 떠나기 전에 이미 3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이 대북정책 6대 원칙을 발표했는데 한미일 정책 공조와 우리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둘째, 미언론의 논조가 9일 아침부터 ‘부시행정부가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대북 모멘텀을 살려라’는 식으로 약속이나 한 듯 전부 바뀌었다. 셋째, 시카고 체류중에 벌써 미측으로부터 3월 하순경에 한미일 3국 실무협의회를 갖자는 연락이 왔다. 이것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미측의 대북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줘 간격을 좁혀줬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상당기간 소강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인데….

“김대통령은 미측에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관계 개선은 떨어질 수 없다. 상호보완하지 않으면 둘 다 제대로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확정하는 대로 북―미관계의 실마리는 풀려나갈 것이다.”

―13일 시작되는 5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미국의 대북 인식 등을 북측에 전달하나.

“김대통령이 적당한 계기에 부시대통령의 대북 인식에 대해 북측에 알려 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이번 장관급 회담이 될지 아니면 다른 방식이 될지는 얘기할 입장이 못 된다.”

―앞으로 북―미관계에서 ‘조정자’로서의 한국정부와 김대중대통령의 역할이 더 중요하게 됐다는 지적이 많다.

“어차피 김대통령이 남북, 북―미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반도문제 해결에 있어 김대통령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때 ‘평화선언’ 합의나 ‘평화협정’체결을 추진하겠다고 말해 오다가, 이번 방미 중에 김대통령이 갑자기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조항을 활용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압력이나 개입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오해다. 김대통령이 ‘평화선언’을 거론한 적이 한번도 없다. 따라서 방침이 바뀐 것도 없다. 다만 2차 정상회담에서도 1차 때의 ‘6·15 공동선언’같은 문서가 하나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형식과 명칭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것으로 4자회담에서 논의될 것이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는 긴장완화 조치들이 다 합의돼 있다.” 2차 정상회담에서는 그런 것들 중에서 실질적인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갑자기 남북 기본합의서와 불가침선언 얘기가 나온 것은 의외였다.

“정상회담 등에서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가 나오니까 ‘긴장완화는 남북간에 오래전에 합의된 사항인데 이행이 안되고 있을 뿐이다. 92년 기본합의서에 다 나온 것이다. 기본합의서 다 나와 있는데 그걸 끄집어내어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논리에서 대통령이 기본합의서 얘기를 꺼낸 것이다.”

―4자회담은 언제 재개되나.

“미국도 동의하고 중국도 동의하는데 북한이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최근 실무적으로는 한번 제의한 적이 있지만 답이 없다. 북측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쯤 재개될지 단언할 수 없다.”

―정상회담 내내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의 대북 발언에 혼선이 있는 등 부시행정부가 한반도정책을 놓고 채 정리가 안된 느낌을 주었다.

“정책 입안이 채 안된 상태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일관성이 없게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정책이나 입장 변화가 아니라 대북정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나오는 부수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미국이 김대통령의 ‘포괄적 상호주의’에 얼마나 동의하고 공감했나.

“미국이 그것을 안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다. 부시대통령도 ‘포괄적 상호주의’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경청하고, 고민하는 인상이었다.”

―북한의 핵 미사일 문제는 북―미간에, 재래식 무기 등 긴장완화 문제는 남북간에 한다는 김대통령의 ‘역할분담론’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어땠나.

“미국이 즉답을 주지는 않았다. ‘포괄적 상호주의’와 ‘역할분담론’은 미국이 앞으로 고민하고 입장을 정립해야 할 문제들이다. 미국이 따라오리라고 본다. 안 따라오면 문제가 해결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러 공동성명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의 보존 강화를 명기하면서 야기된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파문에 대해 미측의 오해가 풀렸다고 생각하나.

“우리 언론의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이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내게 책임이 있다. 러시아는 처음에 ABM조약 개정에 반대하고 NMD에 우려를 표명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한―러간에는 문제가 하나도 없게 됐다. ABM조약의 강화는 미국이 주장해 온 표현이다. NMD 반대와는 관계 없다.”

―김대통령이 ABM조약 문구가 안 들어가는 게 좋았다고까지 말했는데….

“방미 중에 가는 곳마다 질문을 받았다. ‘러시아 편을 들어준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김대통령은 이런 논의가 일어난 것 자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이지 그 내용에 대한 유감 표명은 아니었다.”

<정리〓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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