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관련 회고록 내용

  • 입력 2001년 2월 17일 17시 06분


▼김대중 비자금 일대 충격▼

신한국당 전당대회가 끝난지 일주일 후인 10월 7일, 김대중씨가 그 동안 거액의 부정축재 자금을 관리해 왔다는 의혹이 폭로되어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날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씨가 3백65개의 가·차(假借名) 및 도명(盜名) 계좌를 통해 동화은행 등에 입금액 기중으로 6백 7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관리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검찰의 수사를 촉구했다.

강삼재 총장은 “노태우씨에게서 받은 돈은 20억원뿐이며 소위 ‘플러스 알파’는 없다”는 김대중씨의 주장과는 달리, 김대중씨가 노태우씨로부터 6억3천만원을 추가로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면서, 노태우씨가 1991년 세차례에 걸쳐 당시 평민당 사무총장 계좌 등을 통해 김대중씨에게 전달한 내역을 밝혔다.

강총장은 또 김대중씨가 1992년 대선이 끝난 뒤, 선거 때 쓰고 남은 돈의 일부인 62억여원을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이후 재벌과 사채업자 등을 통해 불법으로 실명전환했으며, 이 바자금 중 40억원은 노태우씨가 한보를 통해 불법 실명전환한 것과 마찬가지 수법으로 대우그룹등을 통해 실명전환했다고 밝혔다.

또 김대중씨의 비자금 관리책은 그의 처조카인 이형택 동화은행 영업본부장이며, 동화은행에 김대중씨의 비자금이 유입돼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던 중 제보를 통해 김대중씨의 ‘검은 돈’ 중 극히 일부분을 밝혀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대중씨가 재벌한테서 받은 뇌물 등 비자금의 내용도 확인 중이라며, 앞으로 2차·3차의 추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삼재 총장은 기자회견 전날 밤 이회창 총재로부터 “내일 아침 일찍 구기동 나의 집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음날 강 총장은 이회창으로부터 1차 6백 70억원 비자금 조성 의혹, 2차 기업 비자금 수수 의혹, 3차 친·인척 비자금 관리 의혹 순으로 된 자료를 넘겨 받았다. 이들 자료는 이회창씨가 비밀리에 입수했다.

10월 10일 신한국당 이사철 대변인이 2차로 김대중씨가 기업으로 받은 비자금의 내역을 폭로했다. 그는 김대중씨가 1992년 대선을 전후해서 재벌을 포함한 10개 기업으로부터 모두 1백34억여원의 돈을 받았다면서 조만간 근거 자료 제출과 함께 김대중씨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10월 14일 법사위 국정감사에서는 ‘3차 폭로’가 이루어졌다. 신한국당 송훈석 의원은 김대중씨가 1987년부터 1997년 6월까지 동화·신한·한일은행 등 금융기관에 부인과 장남·차남을 비롯, 3남과 며느리 등 친·인척 수십 명의 차명계좌 3백여개를 이용해서 모두 3백78억원을 분산·은닉했다고 폭로했고, 이어서 정형근 의원은 김대중씨가 1989년 노태우 정권의 중간평가를 유보해주는 대가로 2백억원을 받았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3차에 걸쳐 폭로된 김대중씨의 비자금 액수를 모두 합치면 총 1천3백여억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

신한국당은 10월 16일 그 동안 폭로한 자료를 근거로 김대중씨를 특가법상의 조세 포탈죄와 뇌물수수죄, 무고 등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여·야 간에는 김대중 비자금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대선정국은 갑자기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난기류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회창씨는 온갖 경로를 통해 김대중씨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나에게 면담을 요청해왔다. 김대중씨 역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나와의 면담을 요청해왔다. 검찰은 검찰대로 이를 수사해야 될 것인지를 놓고 난감해했다.

▼잘못하면 민란 일어날 판▼

이회창씨가 김대중씨의 비자금을 폭로하고 검찰의 수사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나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회창씨는 김대중씨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자신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일단 김대중씨의 부정 축재를 수사하게 되면 그의 구속은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전라도 지역은 물론 서울에서도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럴 경우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선거 자체가 없어질 상황인데 어떻게 당선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회창씨의 생각은 경쟁자를 선거에서 배제하려다가 선거 자체를 없애버리게 될 무모한 발상이었다. 그는 눈앞의 승리에만 급급해 이런 잘못된 시각을 갖게 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없어진다면 국가 전체는 대혼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못한 채 헌법에 정한 나의 임기 만료일이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10월 19일 일요일 아침 9시, 나는 청와대 관저로 김태정 검찰총장을 불렀다. 집무실로 부르면 당장 신문에 보도되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을 택해 관저로 부른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김태정 총장에게 지시했다.

“만일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검찰에서 수수하게 되면 대통령 선거를 치를 수 없게 된다. 광주를 비롯한 호남과 서울에서도 폭동이 일어나 선거를 치를 수 없다. 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헌정이 중단되고 대통령 없는 나라가 된다.이게 말이나 되느냐. 그러니 안 된다. 대통령 선거 이후로 비자금 수사를 미룬다고 내일 당장 발표하라.”

김태정 총장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일 검찰 간부들과 내부 조율을 해서 모레 발표하면 어떻겠습니까”고 했다. 나는 “좋다. 그렇다면 모레 반드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뒤인 10월 21일 오전, 김태정 검찰총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에 대한 비자금 의혹 고발사건 수사를 15대 대통령 선거 이후로 유보한다”고 공식발표했다.

▼”감사합니다” 연발한 김대중씨▼

비자금 수사를 유보시킨 직후, 나는 진작부터 준비했지만 ‘김대중 비자금’문제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대선 후보들과의 개별 회동을 추진했다. 10월23일 나는 이회창·김대중·김종필·조순·이인제씨 등 5명의 대통령 후보와 연쇄 조찬 회동을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나는 대선 후보들과 만나 대통령으로서 ‘공명정대한 선거관리’의 의지를 분명히 확인시켜 두는 동시에 경제 현안과 안보 문제 등을 챙겨나가는 데 협조를 구할 생각이었다. 나는 1997년 대선을 가장 민주적이고 모법적인 선거로 만드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과업이라고 생각했다. 사심을 버리고 초연한 위치에서 그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나의 대통령직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10월 24일, 대선 주자들과의 조찬 회동 중 첫번째로 김대중씨와 만났다. 신한국당의 비자금 폭로 이후 김대중씨는 다섯번에 걸쳐 나와의 면담을 요청해 놓고 있었다. 국민회의 의원을 시켜 면회 요청을 하는가 하면, 김용태 비서실장이나 조홍래 정무수석에게 사람을 보내 요청하기도 했다. “나도 칼국수 먹을 줄 압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먼저 “대통령으로서 초연한 입장에서 헌정사상 유례없는 공명정대한 선거관리를 하겠다”고 밝혔다. 또 “4개월 후인 2월 25일 대통령직을 그만둘 사람으로서 대통령 선거가 내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전라도 출신인 고건 총리를 임명한 것도 공명선거를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반드시 누가 돼야 하고 누구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느 후보에게도 절대 불이익이 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김대중씨뿐 아니라 이후 만난 모든 후보들에게도 똑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이회창씨의 비자금 폭로에 대해 “비자금 폭로에 대해 몰랐으며, 사전에 알았다면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김대중씨는 내가 비자금 수사를 유보한 데 대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김대중씨는 이날 나에게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수없이 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김영삼 대통령회고록'하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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