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컴퓨터 전문털이 판친다

  • 입력 2001년 1월 21일 16시 28분


“재운이 없어 그랬다 치고 그냥 잊고 살아요.”

지난해 10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H빌딩에서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다가 데스크톱 PC와 서버 15대, 노트북 PC 2대 등을 몽땅 잃어버린 L씨는 사무실 도난 사건을 ‘팔자소관’으로 돌렸다. 이날 다른 사무실 직원들은 20대 남자 3,4명이 “회사를 옮긴다”고 말하며 출입문을 부수고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 장비를 트럭에 싣고 유유히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벤처기업의 첨단 컴퓨터 장비만 노리고 다니는 전문털이 조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재작년 5월 검색 포털 사이트를 준비하던 K씨도 비슷한 피해자. K씨는 “이사하면서 환기구를 미쳐 막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며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K씨는 서초동의 한 빌딩 지하에서 컴퓨터 서버 1000만원 어치를 잃어버린 뒤 사무실을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겼다.

당시 K씨는 통장에 든 돈을 모두 빼 용산에서 업그레이된 컴퓨터와 서버를 사 서초동 사무실에 옮긴 날 도둑을 맞았다. 용의자들은 1층 복도로 통하는 환기구를 통해 훔친 물건을 옮겼다.직원들이 경찰에 찾아가 여러 차례 물건을 찾아달라고 호소했지만 1년 반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지난해 9월 말 서울 논현동의 한 PC방도 L씨와 K씨의 피해 사례와 비슷하다. 당시 이 PC방은 수천만원어치 컴퓨터를 사들였으나 개업식을 하기도 전 장비를 대부분 도난당했다. 용의자들은 트럭을 대놓고 장비를 싣고 달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업체는 지난해 4층짜리 건물에 사무실을 차렸으나 용의자들은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 바깥 창문을 부수고 컴퓨터를 훔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사 직원 A씨는 “도난 당한 컴퓨터 가격은 다른 기종 보다 훨씬 높다”며 “비슷한 범행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도 범인을 잡았다는 얘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말 서초동 법무사사무실 광고대행사 등 사무실 일대를 휩쓴 컴퓨터 떼강도에 대한 검거 실적도 감감 무소식이다.

컴퓨터 전문가들은 “도난된 컴퓨터 장비의 제조번호를 지워버리고 중고시장에 내놓는 지능 범죄가 성행해 제조번호만으로 유통경로를 역추적하는 수사는 한계에 이르렀다”며 “범죄 수법이 정교해지는 만큼 수사도 첨단 방식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지적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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