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스포츠 흔들기'

  • 입력 2001년 1월 8일 18시 31분


새해의 시작이 왜 이리 어수선한지 모르겠다. 국회의원 3인의 이적으로부터 비롯된 정치권의 ‘죽기살기’식 싸움은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경제의 침울한 분위기는 여전하고. 이럴 때 스포츠에서라도 신나는 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국제통화기금(IMF)의 한파를 잠시라도 잊게 한 박찬호와 박세리의 활약처럼.

하지만 스포츠계의 사정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로야구의 선수협의회 갈등은 여전하고, 프로농구 감독들은 시즌 중 물러났으며, 월드컵 준비도 불안의 그늘은 남아 있다. 그뿐인가. 체육인들이 스포츠 자립의 젖줄로 여기는 체육진흥기금은 또 정부의 도마질을 기다리고 있다. 뒤숭숭하다고 표현한 것도 실은 체육기금 탓이다.

체육인들은 어제 국회 앞에서 체육기금의 공공기금 전환 반대 집회를 가졌다. 1999년에 이은 두 번째 반발이다. 1999년에는 정부가 체육기금을 청소년육성기금에 통합하는 계획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당시 체육인들은 문화체육부가 문화관광부로 개편되며 체육담당 부서도 축소된 판이라 ‘스포츠의 위기’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격앙된 자세를 보였다. 통합운영은 기금설립 정신에 어긋나며 올림픽 잉여금 등 민간기금으로 설립된 기금에 정부가 간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체육인들의 논리는 받아들여졌다.

체육인들의 어제 집회도 1999년과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상황도 학교 체육시간의 축소, 엘리트 체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무부대의 2년 뒤 해체, 문화관광부 소관이었던 마사회의 농림부 이관 소식에 이은 것이라 비슷하고.

논리는 그렇다 치고 체육인들이 정부의 계획을 ‘스포츠 뿌리 흔들기’로 여기는 중요하고 실질적인 이유는 ‘돈’과 관련이 있다. 간단히 말해 공공기금이 되면 기금운용 절차가 복잡해지고, 체육재정 규모가 줄어든다는 주장이다. 사실 체육재정의 70%가 체육기금에서 조달되는데 공공기금이 되면 정부예산 배정의 우선순위에 따라 체육예산이 감축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의 기금 정비 계획은 타당하다. 목적에 어긋나거나 부실 운용된 공공기금도 있었고, 해당 장관의 승인만으로 설립돼 별 제재를 받지 않고 운용되는 기타기금 중 일부는 사금고화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체육기금은 목적에 맞게 비교적 투명하게 운용됐다는 체육계의 말은 일리가 있다고 본다. 89년 설립 이후 체육계 지원액이 8000억원이나 되고, 3521억원의 기금이 이자수익 외에 여러 사업을 통해 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민간기금으로 설립돼 체육의 생명줄 역할을 해온 체육기금을 법까지 개정해 공공기금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윤득헌<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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