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라이프니치 하우스 반상회

  • 입력 2001년 1월 5일 14시 35분


엘리베이터에 방이 붙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라이프니치 하우스 주민 모임이 열린답니다. 이웃간의 새해 인사, 친목 도모를 위해 관리담당 헬무트 부인이 준비한 모임인데 집에서 마련한 먹거리도 적극 환영이라는군요. 라이프니치 하우스는 사무실과 연회장이 있는 본관과 3개 동으로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어 다들 모이면 꽤 큰 모임이 될 것 같습니다. 하노버 대학을 방문한 외국인 교수가족들의 아파트인 만큼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도 있겠구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우네 가족이 반상회에 빠질 리 없습니다. 나우 아빠가 나우에게 개량한복을 입히고 있는 동안 나우엄마는 부지런히 해물파전을 준비합니다. 하노버 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김희숙 선배가 한국식품점을 알려줘서 고소한 한국산 부침가루를 구할 수 있었거든요. 먹음직스러운 파전에 간장까지 담아 들고 라이프니치하우스 정문벨 딩동! 늘 본관과 아파트 사이의 샛길만 이용하다가 정문으로 들어서니 기분도 새롭군요. 멜빵바지에 경쾌한 차림이던 관리인 자이펠트도 정장을 하고 2층 연회장으로 정중하게 안내해 줍니다.

캐주얼 하게 입고 갈까 하다가 그래도 모임인데 하며 갖춰 입길 잘했네요. 헬무트 부인도 평소와 달리 정장을 했더라구요. 체크무늬 쇼올과 원피스. 동물 디자인의 목걸이를 근사하게 걸치고 나타나자 모인 사람들도 한마디씩 칭찬의 말을 건넵니다. 오늘의 의상은 이곳에 머물다 간 사람들에게서 받은 선물로 코디를 한 것이랍니다. 세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이 너무나 즐겁다며 활짝 웃는 모습이 오늘 따라 더 멋져 보입니다. 나우의 개량한복도 그날의 히트 아이템. 나우 주위에서 한국 어린이의 전통의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사진까지 찍어갑니다. 자랑스러운 남대문 시장 만세!

오늘도 환영음료 프로젝트가 준비되어 있군요. 각자 집에서 준비한 음식이 모이자 금세 한 상 차려졌습니다. 중국인 가족의 춘권, 나우네의 해물파전, 자이펠트 부인의 버섯수프, 핀란드 주부 비르바의 당근케이크, 일본 가와노 가족의 초밥 등등. 퓨전 퀴진의 진수가 여기에 있군요. 나우네의 해물파전은 코리안 피자라는 이름으로 뚝딱 한 접시가 팔려 나갔답니다.

오늘 행사 순서. 1부는 간단한 음료와 식사. 2부는 101호에 사는 미국인 교환교수 포스너씨의 발표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뉴욕에서 택시기사를 하다가 철학교수가 된 그는 늘 빗질을 하지 않은 폭탄 머리에 휘파람을 불고 다니는 쾌활한 사람입니다. 라이프니치 하우스 탁구대회를 열자며 집집이 서명운동을 하는 괴짜이기도 한데 그가 뭔가 발표한다니 모두들 궁금한 표정이지요. 오늘의 세미나 타이틀은 이름하여 "라이프니치 쿠키"

라이프니치 쿠키는 하노버를 대표하는 과자입니다. 라이프니치 하우스의 건축양식인 요철디자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오톨도톨한 과자죠. 괴짜 미국인 교수는 이 쿠키를 그의 강의 소재로 삼아 한달 동안 학생과 쿠키를 이용하여 창작물을 만드는 유쾌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답니다. 각각의 작품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어 둔 것을 오늘 라이프니치 하우스 반상회에서 특별히 발표하기로 한 거죠.

식사를 마치고 1층 세미나 장에 집합. 평소에는 하노버 대학의 회의장이나 세미나 장소로 사용되는 곳인데 오늘밤은 특별히 우리를 위해 비워 주었습니다. 포스너 교수가 한장 한장 슬라이드를 넘길 때마다 사람들은 정말 쿠키로 만든 건가 놀라며 탄성을 지릅니다. 쿠키를 하나 하나 붙여 실제 모양의 라이프니치 하우스를 만든 학생도 있더군요. 저마다 3층 왼쪽이 내집인데, 다락방이 내 집인데 하며 킬킬 웃기도 합니다. 쿠키의 모퉁이만 잘라내어 100개의 꽃송이를 만든 어느 여대생의 작품을 끝으로 슬라이드 쇼가 끝나자 전원 큰 박수! 헬무트 부인이 포스너 교수가 다음달에 베를린에서 소시지를 이용한 새 프로젝트를 위해 베를린으로 이사를 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다시 한번 아쉬운 작별의 이사를 보내줍니다.

며칠 전 헬무트 부인에게서 새해 카드를 받았습니다. 라이프니치 하우스는 그대로랍니다. 올해도 신년 반상회가 열린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선물한 한국 노리개를 달고 나갈 거라고, 한복을 입은 나우를 다시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얼어붙은 눈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맞이하는 새해. 마음 한가운데 난로를 피워 두어야겠습니다.

나우엄마 (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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