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내 어머니 사는 나라'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3분


◇ 내 어머니 사는 나라 / 이금이 글, 이선주 그림 / 199쪽. 푸른책들 6500원

며칠만 피해 있으면 될 줄 알았어. 며칠만….(본문19쪽)

실향민인 할아버지를 따라 금강산에 가게 되었을 때, 수빈이는 마냥 신났다. 현장 학습이라는 핑계로 학교도 결석할 수 있고, 타이타닉호처럼 커다랗고 멋진 배도 탈 수 있고, 금강산도 구경하고…. 그러나 이렇게 들뜬 기분은 여행 첫날 밤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할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다 날아가 버렸다.

“형님, 이렇게 배멀미라도 하면서 가는 게 훨씬 나아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가슴에 한이 맺혀 눈도 제대로 못 감고 돌아가셨을 텐데 어떻게 유람길 나선 것 모양 편안히 고향엘 갈 수가 있단 말이오. 마음 같아선 다리 한쪽이라도 부러뜨려 한쪽 발로 절뚝거리며 가고 싶습니다.”

여행 중에 울음을 터뜨린 사람은 수빈이 할아버지뿐이 아니었다. 북한 땅 가장 남쪽에 있는 온정역, 그 동리가 어머니의 고향이라는 한 할머니는 터져 나오는 울음 때문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우, 우리 어머니 사,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살아 생전에, 살아 생전에 고향땅 한번 밟아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고향 마을이 눈에 선하다던 우리 어머니는 누, 눈도 못 감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사진 속에서라도 고향 구경을 시, 실컷 하시라고….”

함경도 출신이라는 한 할아버지는 가슴을 탕탕 치며 울부짖었다.

“난 나 살자고 고향을 버린 놈이오. 그래서 평생 좋은 날에도 맘놓고 크게 한번 웃어보지 못했소. 며칠만 피해 있으면 될 줄 알고 고향을 떠났소. 고향 땅에는 오마니와 동생들뿐 아니라 처자도 있었는데….”

3박4일의 여행을 마칠 즈음, 수빈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금강산이 내려다보이는 구룡대 꼭대기에 큰할아버지의 사진을 묻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먹먹해진 가슴으로 중얼거렸다.

‘큰할아버지 이젠 마음껏 가족들을 만나세요. 살아서 못하셨으니 그곳에 가셔서라도.’

또 한해가 간다. 올해 들어 비로소 풀기 시작한 50년 묵은 숙제. 우리가 분단이라는 그 숙제를 온전하고 개운하게 풀어내려면 우리 아이들이 모두 또 다른 수빈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상처를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땅의 5학년 이상 아이들에게 권한다.

(햇살아동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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