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産銀 회사채 직접인수]官治논란 감수 고강도 응급처방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8시 40분


“관치(官治)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자금시장 대책을 내놓은 것은 흔들리는 시장을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종구(李鍾九)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정부가 26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결정한 ‘산업은행의 회사채 직접인수 방안’은 지금까지 내놓은 자금시장 안정책과는 차원이 다른 ‘초고강도’ 대책으로 평가된다.

국책은행이 총대를 메고 민간기업 회사채를 직접 인수하는 방안은 자금시장에서는 사실상 ‘긴급조치’나 마찬가지다.

▽정부, 수술하다 환자 숨질까 걱정〓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직접인수는 정부가 10월중순부터 도입할까 망설이던 대책이다. 은행들은 연말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느라 위험자산인 회사채는 외면했다. 투신사도 올들어 돈이 100조원이나 빠져나가 채권을 인수할 수 없었다. 시장자율로는 자금난을 풀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

정부에서는 10월에만 해도 ‘반대론’이 우세했다. 종이쪽지로 바뀔지 모르는 회사채를 정부나 마찬가지인 국책은행이 떠안는다는 것은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포기하는 것과 똑같다는 목소리가 대세였기 때문. 그러나 다급한 나머지 결국 이번 대책이 나왔다.

▽4대그룹 계열사도 포함돼 ‘파격’〓정부가 그동안 사용한 프라이머리 CBO(자산담보부증권)나 CLO(대출채권담보증권)는 주로 중견기업을 상대로 한 것.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발표된 대책에서도 4대그룹 계열사는 ‘자체 해결’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4대그룹 계열사도 포함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종구 국장은 “대규모로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것을 감당 못해 일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은 모두 대상이 된다”며 “현대건설도 예외는 아니다”고 말했다. 내년중 만기가 돌아오는 65조4000억원 회사채중 신용등급이 A이상으로 자동적으로 차환발행이 가능한 기업과 부도상태 기업을 뺀 25조원어치에 대해 산업은행이 대부분 책임진다는 설명이다.

▽기업 모럴해저드 우려된다〓자금대책에 ‘단골메뉴’인 10조원짜리 채권형펀드는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10조원씩 순차적으로 만들겠다는 방침. 정부는 긴급조치나 다름없는 이번 대책을 내년에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번 대책으로 기업들은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하고 정부에 등을 기댈 우려가 크다는 점.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산업은행이 기업 회사채를 떠안아 부실해질 경우 국민세금으로 결국 막아야 하고 신용보강이 됐다고 하더라도 투자위험은 결국 정부 몫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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