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대북 전력지원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8시 45분


허문영(왼쪽)· 제성호
허문영(왼쪽)· 제성호
북한이 남한에 요청한 200만㎾의 전력지원을 놓고 찬반 양론이 벌어지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남북한의 경제협력 활성화와 상호신뢰 조성 및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북한에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식량이나 비료 문제와는 달리 전력은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만큼 국민적 재정부담 등을 충분히 고려해 장기적 구도하에서 치밀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찬성/남북 경제공동체 조성에 도움▼

북한의 4대 경제난(식량 에너지 생필품 외화) 중 사활적인 사안은 에너지 문제이다. 지난 해부터 북한은 “전기문제가 풀리면, 석탄 철강재도 나오고, 비료와 쌀도 나오고, 긴장한 철도수송 문제도 풀린다”고 강조하면서 전력문제 해결을 경제 재건의 핵심고리로 규정하고 있다.

북한은 그 해결책으로 대내적으로 절전운동과 중소형 발전소 건설을 제시하였고 급기야 이번 4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전력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면 남북전력 협력사업을 추진해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 단 그 방식에 있어서는 ‘무조건’이 아니라 일정 전제를 엄격히 달아야 할 것이다.

무상공여의 식량지원이나 차관 형식의 비료 지원방식과 달리 유상판매의 정부 주도 민간베이스 정책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기술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전력지원 문제를 무작정 깔고 앉아 갑론을박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역사적인 전력지원은 첫째, 남북간 신뢰조성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것이다. 북한의 체제적 특성과 기술 및 자금 그리고 제반여건을 고려할 때 에너지 문제의 자체 해결은 단기적으로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쉽지 않다. 이 북한체제의 사활적 관건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세는 우리 정부에 대한 북한 당국의 신뢰를 확보하는 지름길이 된다.

둘째,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고 민족경제공동체를 복원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다. 산업의 동력원인 에너지난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남북경제교류협력의 활성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남북전력 협력사업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균형 잡힌 에너지 산업구조 기반 구축이 첫발을 내딛지 못할 경우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은 요원한 일이 된다.

셋째, 정부의 재정부담을 해소하고 통일비용을 절감하는 동시에 군사비 전용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단독으로 북한에 전기를 공급할 경우 무상으로 지원해야 하며 그 비용은 6000억원에서 최대 2조5000억원으로 추정되는 만큼 국민적인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남북 정부 관리하에 민간사업으로 추진할 경우 유상판매를 통해 우리 국민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북한의 전력 공급체계 및 가격체계를 개선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남북한의 합리적 에너지 수급체계를 마련해 통일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또한 현대가 금강산 관광사업으로 지불하는 비용(1조2000억원)을 전기로 현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해 현금이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도 있다.

남북전력 협력사업은 1948년 북한의 일방적 대남 단전 조치 이후 분단되었던 민족의 혈맥을 복원함으로써 남북 화해와 상징적 통일을 달성, 새 밀레니엄의 민족 공동발전의 장도를 함께 열어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허문영(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반대/잉여분 없고 군사用 전용 우려▼

북한은 비료 30만t과 식량 60만t 등 엄청난 경제적 실리를 챙긴 데 이어 최근 200만㎾의 전력까지 직접 송전방식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우리 대표단을 압박하는 한편 향후 전력지원을 남북간 기합의 사항의 이행과 연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식량과 비료를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측에 제공해왔다. 같은 동포인 북한주민들이 굶어죽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논리에서 그런 지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력은 명백하게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전력은 인도적 물자가 아니며 군사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은 전략물자 중 하나다.

더욱이 북한의 전력난이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지원을 할 경우 지원 목적과 다르게 사용됨으로써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소지가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장 전력 예비율이 10∼12%선인데 우리나라의 전력 예비율은 12.2%에 불과하다. 여유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막대한 전력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런 조치는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문제의 본말이 전도되는 사태로 이끌 우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만약 전력지원이 이뤄진다면 이후 북한의 대북지원 요구는 끝이 날까? 십중팔구 송배전 시설의 지원을 추가로 요구해올 공산이 크다.

우리가 북한경제의 모든 분야를 다 책임지고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는 없다. 먼저 북한이 스스로 가능한 자구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하고, 우리의 경제여건과 남북관계 진전에 맞게 잉여전력을 지원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런 점에서 전력지원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합리적 원칙에 입각해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국민정서를 외면한 대북지원을 무리하게 강행해서는 안된다. 북한에 대한 전력 지원은 국민에게 막대한 재정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이므로 반드시 국회의 동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

둘째, 전력지원이 우리측에 어떤 안보적 위협을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사전 연구와 더불어 그에 대한 심도 있는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결코 평화적 목적의 이용이 보장되지 않는 전력지원을 해서는 안된다.

셋째, 상호주의 차원에서 전력지원의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것을 북한측으로부터 확실하게 얻어내야 한다. 무연탄이나 마그네사이트의 채굴권 확보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요컨대 ‘일방적인 퍼붓기’식의 대북지원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 그것은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자칫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남북관계를 호혜적인 관계, 민족상생과 공동번영의 관계로 만들어 가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전력 지원 문제는 그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제성호(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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