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패밀리 맨>,"내가 지쳤을때 누가 위로해주지"

  • 입력 2000년 12월 21일 18시 59분


연말연시, 연인이나 부부가 보기에 적당한 ‘패밀리 맨(The Family Man)’은 찰스 디킨즈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가벼운 호흡으로 리바이벌한 것같은 영화다.

돈 밖에 모르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은 기업 인수합병 전문가인 잭 캠벨(니컬러스 케이지)로 바뀌었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크루지 영감을 찾아와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하는 옛친구 말리의 영혼은 흑인 무장강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돈 치들)로 대체됐다.

이 영화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돈과 사회적 성공, 명예보다는 따뜻한 가족애와 인간적 가치가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제리 맥과이어’같은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자주 다뤄진 탓에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이 주제를 코미디의 톤으로 경쾌하게 그렸다.

일 중독에다 부자이고 독신인 잭은 곧 발표할 대규모 기업 합병건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브도 안중에 없다. 밤늦도록 일을 한 뒤 술을 사러 들른 수퍼에서 무장강도를 만난 그는 특유의 협상력으로 위기를 넘기고 “나는 인생에서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그는 더 이상 부자도 아니고 13년전 헤어진 애인 케이트(티아 레오니)와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인생에서 필요한 게 정말 없는지, 다른 인생을 슬쩍 엿보기만 하라”며 잭을 새로운 환경에 던져넣은 천사의 말은, 이 영화가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인지를 빤히 보이게 한다. 시작할 때부터 이후의 전개가 예측 가능한 플롯보다는 낯선 환경, 평범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잭의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이 영화의 볼거리.

멍한 표정으로 좌충우돌하는 니컬러스 케이지나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에서 인생의 가장 큰 의미를 찾는 티아 레오니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의 훈훈한 온기는 다른 누구보다 이들의 딸 애니 역을 맡은 배우 마켄지 베가의 깜찍한 연기 덕택이다.

사회적 성공과 가족의 행복을 대립시킨 뒤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이 영화의 이분법은 너무 단순하다. 그러나 소시민으로 살게 된 새로운 환경에서 “이 지루한 일상의 대가가 뭐냐”고 회의하는 잭의 모습은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를 자문할 수많은 중년들을 닮았다.

잭이 도달한 결론처럼, 떠도는 자의 설렘과 꿈을 포기하고 한 곳에 안주한 대가로 얻게 되는, 때로 무료하고 때로 안온한 일상이 위로가 되지 못할 게 또 무어란 말인가. 감독 브렛 래트너. 30일 개봉. 15세이상.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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