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강섭/자살사이트 당장 폐쇄해야

  • 입력 2000년 12월 18일 19시 00분


자살과 관련된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이 늘어나더니 마침내 ‘촉탁 자살’ 사건까지 일어났다. 자살은 물론 선악의 잣대로만 볼 일은 아니다. 전세계 사망원인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살은 정신과 영역에서 가장 급박한 문제 중 하나이며 선진국가에서 이미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그런데 자살은 개개인의 정신적 문제인 동시에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이를 설명한다. 즉 자살의 원인이 사회에 있으며 특히 개인이 사회집단과의 단절감으로부터 느끼게 되는 사회심리적 고립감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1960년대의 산업화 이후 한국에서 자살률이 늘어가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원인, 즉 산업화에 따른 지나친 현대문명의 발달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관계의 기계화, 분업화, 사무화가 인간성 상실을 일으킨다. 또 지나친 경쟁주의적, 황금만능적 사상이 사회 일반에 널리 퍼지면서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로 인식하는 것이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자살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도 많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 탓으로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누구라도 어려운 시기가 되면 어느 정도 자살의 충동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자살 충동을 적절히 조절하고 나아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이다.

인터넷 자살 사이트는 이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자살에 관해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그보다는 자살을 당연시하거나 심지어 미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에게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사고방식이 부정적이고 주관적이다. 따라서 객관적 지식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주어진 내용도 자기 멋대로 해석하기 쉽다. 자살이 미화될 수 있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일시적이더라도 자살 사이트에 계속 접근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행동을 그런 쪽으로 끌고 가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네티즌들은 유행처럼 인기 검색어를 찾는 경향이 있고 여기에 일본식 상업주의가 개입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자살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일본에선 10여년 전 ‘자살하는 법’이라는 책이 발간돼 인기를 얻었고 몇 년 전부터는 자살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중독자들은 일반적으로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자살과 친숙해진 사람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살을 증가시키는 사회적 개인적 병리 현상에 대한 일반의 이해와 이를 예방하기 위한 각계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해졌다.

동시에 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 자살 사이트는 당장 폐쇄하고 이에 대한 반성과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오강섭(성균관대 의대교수 ·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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