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대형 우량은행간 합병

  • 입력 2000년 12월 15일 19시 03분


《초대형 은행의 탄생을 예고했던 국민―주택은행간 합병 협상이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일단 중단된 상태지만 정부는 대형 우량은행간 합병을 계속 추진할 태세다. 대형 우량은행의 합병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않는 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하는 측은 정부가 개입하는 합병은 부실금융기관에 한정돼야 하며 또한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

▼찬성-국제경쟁위해 초대형화 불가피▼

합병은 은행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널리 활용되는 기본적인 전략의 하나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위기를 맞은 이후에야 비로소 한국에서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이 이루어짐으로써 북한이나 쿠바 등 은행합병도 못하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후진적인 나라의 범주에서 벗어났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뚜렷한 하강세를 보이고 동아시아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이 추진되고 있다. 내년 초부터는 예금보장이 부분보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방침이 이미 3년 전에 발표됐으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합병이 아니라 우량 은행간에 더 강력한 은행이 되기 위해 자율적으로 추진되는 합병의 성사여부는 한국이 21세기 세계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는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국가인지 또는 한국의 은행이 과연 주식회사인지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노조가 격렬하게 반대하면 주주의 이익이 쉽사리 무시되는 은행에 어느 누가 투자하고자 하겠으며, 그러한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면 왜 굳이 한국에 투자하고자 하겠는가. 그래서 은행이 취약해지고 기업이 수익성을 상실한다면 이 땅은 실업자로 넘쳐나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다.

금융도 국제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다. 씨티은행이나 HSBC, 메릴린치와 같은 초대형 금융회사들은 이미 동아시아의 부유층 대상 금융업무를 석권할 목적으로 매년 수조원씩을 정보통신(IT) 투자에 쏟아붓고 있다. 수익성을 드높여서 자본을 확충하고 규모를 키워 IT에 대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금융주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것이 현실적인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을 고용하지도 않고 한국 정부에 세금도 내지 않는 외국 금융회사에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최소한 선진국에서 늘 하는 은행합병을 성사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대형은행은 2, 3개에 불과하다. 그래야만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적인 규모를 달성하고 있는 미국의 은행도 끊임없이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은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보다 나은 나라들에는 하나같이 세계적인 규모의 은행이 있다. 유럽에서는 후진국으로 분류되었던 스페인도 은행 구조조정에 성공한 결과 피레네산맥을 넘어 서유럽의 은행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보다 더 잘 살기를 원한다면 한국에도 국제수준의 은행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또한 한국에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은행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97년에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범수(금융감독위원회 자문관)

▼반대-정부개입은 부실은행에 그쳐야▼

혼란스럽다. 엎치락뒤치락거리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합병 드라마를 지켜본 소감이다. 갑작스러움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 발단과 전개는 잘라먹고, 절정과 결말만을 관객에게 공개하는 것이 기업합병의 기본임은 알고 있다.

두 은행의 합병이 가져올 이익에 대한 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혹자는 두 은행의 합병이 시너지 효과를 낳아 주식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형화는 세계적 추세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그럴듯하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은 과잉경쟁 상태로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는 수익성을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역시 공감이 가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의 논리를 근거로 두 은행의 합병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면, 필자의 오지랖이 넓은 꼴이 된다. 필자는 두 은행의 주주도 아니고 경영진도 아니며, 경영자문을 요청받은 바도 없는 3자로서, 관여할 입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은행간 합병 드라마가 우리를 당황케 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가 어째서 구조조정 시리즈의 한편으로 취급되고, 그래서 우리 모두 한 마디씩 거들어야 하는 사안으로 등장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 은행에 정부지분이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우량은행으로 지칭돼오며 정부 스스로 경영권을 행사할 의사는 없음을 밝혀왔기에, 두 은행의 경영권 행사는 전적으로 나머지 주주들의 몫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점이 사실이라면 정부와 정부에 의해 대표되는 국민 모두는 제3자이다. 소위 전문가와 언론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혹시 이제라도 정부가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합병 같은 전략적 사안을 추진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건전성에 이상이 없고 민간 주주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정부는 수동적 주주로 머무는 것이 타당하다. 애초 금융위기의 발생이 시너지 효과나 슈퍼뱅크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의 과잉역할 때문이었음을, 바꿔 말하면 우리 모두의 오지랖이 너무 넓어 은행을 ‘공기업’으로 취급한데서 기인했음을 되새겨 봐야 한다.

정부가 국민을 대표해 어쩔 수 없이 금융기관에 대해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건전성을 상실해 사실상 망해버린 부실금융기관에 한정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자. 즉 구조조정의 대상은 당연히 부실금융기관이며 이 점이 이제 와서 바뀔 이유는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자산부채이전(P&A)으로 부실은행이 정리돼 다른 은행에 ‘합병’될 수 있다. 매우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또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은행은, 공적자금 손실의 최소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합병과 함께 점포 및 인력이 감축돼야 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모아지고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집중돼 추진돼야 할 합병의 모습이다. 노동시장의 규율을 찾는 것도 당연히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나머지는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더라도 제발 시장자율에 넘기자.

신인석(한국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