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윤기/평화통일 기반확대 서두르자

  • 입력 2000년 12월 14일 18시 54분


남북한 정상의 6·15 공동선언이 있은 지 꼭 반년이 지났다. 공동선언이 상당한 긍정적 변화를 몰고 왔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서독 기본조약이 통일바탕▼

여차하면 전쟁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적대적이었던 남북한의 냉전적 대립이 완화되고, 서로를 신뢰할 여유가 어느 정도 생겼다는 것을 무엇보다 큰 성과로 꼽을 수 있다. 민족 내부의 냉전이 종식될 전망이 어느 정도 보이는 만큼 이제는 향후 남북관계의 발전에 대해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6·15 공동선언은 그 서명 및 선언 당사자가 양측 정상이었다는 점에서 7·4 공동성명 이래의 남북한 합의문들에 비해 그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이 격상되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공동선언 역시 남북 권력자 사이의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과거의 권력형 통일담론 성격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남북협상 결과는 남북한 권력자들 사이에 사적으로 오간 일종의 행정적 합의각서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곧 남북관계의 적지 않은 불안요인이기도 하다. 다음 ‘대통령’ 때는 어떻게 될까. 아니면 ‘위원장’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면 뒤집어지지 않을까. 불안감의 이런 내용은 남북관계가 여전히 ‘권력’ 변수에 좌우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럴 때 독일 통일의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 보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970년대 초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선도로 시작된 동서독 관계개선 작업의 1차적 성과는 그 어떤 선언문이 아니라 동서독 관계의 기본 틀이 된 ‘동서독 기본조약’이었다. 이 기본조약을 통해 양 독일간의 모든 문제는 협상과 협정체결을 통해 법제화하고 제도화한다는 원칙에 합의가 이뤄졌다. 즉 동서독 기본조약은 양쪽 국회의 비준을 거쳐 양쪽 국내법으로 수용됐다. 이 기본조약이 동서독 통일에 합의하거나 그것을 목표로 선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부담과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양측의 탈분단 의지는 나눠진 두 나라가 공통으로 추구할 ‘국민적 목표’로 입법화된 것이다. 따라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분단의 고통을 더는 긴장완화의 과업은 법적 의무사항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이것이 의도하지 않은 독일 통일의 준비가 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 ‘남북사업’은 지금까지 전적으로 남북 권력자들의 정책사안이지 아직은 내부 토론을 거쳐 법적으로 제도화된 국가 기본질서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의뿐만 아니라 직접 서명까지 받아냈을 때 필자는 이번 공동선언만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치적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대통령이 6·15 선언 후 평양에서 서울로 귀환했을 때 국회 소집을 요구하고 그 앞에서 대국민 보고와 아울러 국회에 남북문제 토의를 요청하는 당당한 모습을 기대했었다.

이번 노벨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통일까지는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남북의 우리 민족은 이산 가족으로 계속 지내야 할 만큼 이질적이지는 않지만, 두 체제를 당장 통일하기에는 동질성이 너무도 부족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통일, 그것도 우리의 헌법적 의무인 ‘평화’ 통일을 이룰 만큼 남북한 내부에 평화와 통일에 참여할 저변 세력과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 안에서 여야의 당리당략을 넘어 통일 담론을 국민의 것으로 내면화할 토의를 시작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공기업은 민영화하면서 통일논의는 민영화시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남북합의 국민동의 절차 필요▼

남북 정상들의 합의를 남한 쪽에서라도 먼저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치도록 하면 북쪽에서도 그동안 구석에 처박아놓은 인민회의라도 소집하는 격식을 갖추려고 움직이지는 않을까? 아무리 권력순응형 의회들이라지만 남북관계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동원되는 횟수가 많아지다 보면 ‘한반도의 총체적 민주화’를 위한 작은 첫걸음이라도 떼어지지 않을까? 이것이 식량원조보다 더 중요한 진정한 민주통일의 단서가 아니겠는가.

홍윤기(동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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