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서중/방송광고정책 개혁원칙 지켜라

  • 입력 2000년 12월 13일 18시 32분


방송사가 광고를 직접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방송광고로 인한 방송의 공공성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방송광고판매대행사(미디어렙) 제도 도입에 관한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과정은 방송의 공공성은 안중에 없고, 방송사의 특혜적 이익만 챙기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많다.

첫째, 정부의 방송광고 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안은 방송사의 출자를 금지했던 최초안에서 10%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규제개혁위에서는 지분제한 철폐나 ‘20%로 제한해 주체간 균등배분’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방송사가 미디어렙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 실질적으로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다.

둘째, 규제개혁위는 미디어렙에 대한 방송사의 선택권을 보장하라고 권하고 있고, 문화관광부는 미디어렙의 공민영 업무영역 지정을 3년 뒤에 폐지하는 ‘일몰제’로 하겠다고 후퇴했다. 업무영역 구분은 공영방송의 광고 영업을 공영 미디어렙이 맡는 것을 제도화해 공영방송이 방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셋째, 미디어렙 등록제를 권하는 규제개혁위와 미디어렙 허가제를 주장하는 문화관광부가 타협한 결과 3년만 허가제를 하되 메이저 방송사를 하나씩 담당하는 3개 미디어렙 체제로 가는 안이 모색되고 있는데 3년 후에는 방송법을 개정해 방송사의 직접영업을 허용하겠다는 말인가? 또 3개 미디어렙 체제는 3개 메이저 방송사가 시장을 분할 독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볼 때 방송사의 직접영업 체제와 다를바 없다.

미디어렙 제도의 기본은 방송사의 직접영업 효과를 차단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그 효과를 차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미디어렙 제도는 무의미하다. 방송사가 직접 광고영업을 하면 시청률과 광고수입이 직접 연동된다. 방송 광고료는 단기간에 폭등해 광고비의 궁극적인 지불자인 국민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된다. 특수 방송과 인쇄매체는 존폐 위기에 몰릴 만큼 타격을 받게 되고, 3대 방송사는 치열한 시청률 경쟁과 이윤추구의 노예가 된다. 국민은 다양한 언론 서비스를 염가에 제공받을 수 없게 되며 상업주의와 저질방송이 안방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사태를 막을 책임은 문화관광부에 있다. 법안을 입법예고할 때 문화관광부는 민영 미디어렙에 방송사의 직접출자를 허용함으로써 SBS의 직접영업 효과를 보장하는 평지 풍파를 일으켰다. MBC가 강하게 반발하자 문화관광부는 3년 뒤에는 공영방송도 자유롭게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미디어렙 선택권을 주겠다고 양보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시장논리로 재단하는 규제개혁위의 신보수주의 논리에 밀려 방송사별 미디어렙 체제를 놓고 흥정하고 있다.

이렇게 본래 취지에 역행하는 쪽으로 간다면 차라리 법 제정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 정부는 법 제정 과정에서의 정책 실패를 자인하고, 방송법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김서중(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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