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맛있는 수다]업그레이드 점심 메뉴- 크로아상 샌드위치

  • 입력 2000년 12월 4일 15시 12분


세상에 비참한 것 중 하나가 혼자 먹는 점심인 것 같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백화점마다 점심때 아줌마들이 넘쳐나는 걸 보며 "이거, 아줌마들이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니 나라에 망조가 들겠는걸..."하며 한탄을 했었지요. 근데 아줌마가 되고보니 왜 아줌마들이 점심때 떼지어 백화점을 전전하는 지 알겠더군요. 혼자 먹는 점심, 그건 정말 쥐약이죠. 혼자 김치통 끌어안고 밀폐용기에 담긴 밑반찬과 더불어 밥 한 공기를 먹다보면 "질긴 목숨..."하는 소리 나온단 말이죠.

그럴 때 전 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습니다. 밥그릇 끌어안고 인생을 비관하는 것보다는 훨씬 개운한 방법이지요. 물론 재주가 재주인지라 할 줄 아는 샌드위치는 몇가지 안되지만 그래도 종종 해먹다보니 솜씨가 붙더라구요. 최소한 빵집 냉장고에 생크림 케익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 샌드위치보다는 맛있게 만들 자신이 있다 이 말입니다.

주로 식빵을 사다놓고 참치, 치즈, 햄, 오이, 양파, 계란 등등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었는데 얼마 전에 서정희 아줌마의 "자연주의 살림법"을 보다가 크로아상 샌드위치 만드는 법이 있길래 한번 따라해봤습니다. 원래 TV에 비친 서정희 아줌마의 "너무 깔끔떠는"이미지에 질려 "주부를 피곤하게 만드는 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책에 실린 요리들은 의외로 평범한 가정식 요리더군요. 하지만 "살림의 고수"답게 요리법은 고난도였습니다. 음...고난도라함은 재료가 복잡하고 구하기도 만만치 않으며 모양에 있어서 예술을 추구해야 함을 말합니다.

크로아상 샌드위치는 그중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 편이었습니다. 큼지막한 크로아상을 반 갈라 그 안에 슬라이스 햄이랑 양상추랑 브로콜리, 오이피클을 끼워넣고 프렌치 드레싱을 샥샥 발라주면 끝! 프렌치 드레싱을 만드는 방법이 좀 까다롭지만 드레싱 같은 건 한번에 잔뜩 만들어두면 며칠은 먹을 수 있으니까 그 정도 수고야 참아야지요.

이 크로아상 샌드위치의 좋은 점은 우선 맛이 있다는 거지만 맛에 앞서서 보기도 참 좋습니다. 그냥 식빵으로 만든 허연 샌드위치보다 훨씬 고상한 풍모가 있달까...식빵 샌드위치가 동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머슴풍 샌드위치라면 크로아상 샌드위치는 멋진 저택 테라스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도련님풍 샌드위치라고나 할까요? 그냥 접시에 탁 올려만 놓아도 폼이 난단거죠.

물론 맛도 끝내주지요. 일단 크로아상 고유의 부드러운 맛에 아삭아삭한 양상추와 짭짤한 햄이 들어갔으니 맛이 없다면 그게 이상하지요. 주의할 것은 오이피클이 너무 시면 맛이 좀 아니더군요. 너무 삭아서 비실비실한 오이피클 말고 아직은 기가 좀 산 듯한 오이피클이 더 맛있었습니다. 냉장고에 오이피클 사다놓고 거들떠도 안보면 이것들이 쪼글쪼글 맛이 가는데 그러기 전에 알아서 먹어주는 세심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샌드위치를 만들 크로아상은 너무 갓 구운 것보다는 약간 시간이 흘러 안팍이 파삭한 것이 좋더라구요. 너무나 갓 구운 빵은 안이 쫄깃해서 반으로 가르다가 쭈그러뜨리기 쉬운데 그럼 너무 아깝잖아요? 제대로 된 크로아상은 값도 만만치 않은데...파삭한 것으로 골라 빵칼을 사용해 '기를 모아' 갈라주어야 완벽한 상하 대칭의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답니다.

"밥 힘으로 버텨야지..."하며 홀로 외로운 점심식사를 하시던 분들은 꼭 한번 만들어 보세요. 오후가 달라집니다. 내 밥그릇은 내가 업그레이드 시켜야죠...암요...

***도련님풍 크로아상 샌드위치 만드는 법***

재 료 : 크로아상, 슬라이스햄, 양상추, 브로콜리, 오이피클, 프렌치 드레싱(올리브오일 1/2컵,

식초 3큰술, 양파즙 2큰술, 파슬리가루 조금, 양겨자 1작은술, 소금,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 1.크로아상을 반으로 가른다.

2.브로콜리를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 끓은 물에 데친다.

3.프렌치드레싱을 만든다.(준비한 재료를 그냥 섞어주면 땡!)

4.양상추를 씻어 물기를 없애고 크로아상에 끼워준다.

5.슬라이스햄을 반으로 접어 넣고 오이피클과 브로콜리를 넣어준다.

6.프렌치드레싱을 듬뿍 발라준다.

ps...제가 나이들었다고 생각될 때는 빵을 맛있게 먹고 난 후 갑자기 김치가 먹고싶을 때입니다.

이 상큼한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먹고나서 못견디게 깍두기가 먹고 싶어지는 건 분명코 나이탓이겠죠?

조수영 <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