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동연/팬들의 눈 먼 스타사랑

  • 입력 2000년 11월 29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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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H.O.T.의 리드보컬인 강타가 음주운전에 뺑소니 혐의로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받은 날 아침, 소식을 전해들은 열혈 팬들은 경찰서 홈페이지를 순식간에 마비시켜 버렸다. 조사를 담당했던 형사,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 그리고 강타를 구속한 강남경찰서는 사건의 전말과는 무관하게 이들 팬에게는 모두 적이었다.

▼"음주운전이 뭐가 나빠요"▼

세상의 모든 도덕적 판단을 유보한 채 그들은 우상의 신체를 속박한 공권력에 적개심을 드러냈다. 이런 식이었다. “우리 오빠 매도하지 마세요.” “강타오빠를 대통령으로….” “음주운전이 뭐가 나쁜가요.”

올해 초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프로야구선수협의회 결성식이 우여곡절 끝에 치러지고, 서울 강남의 한 건물에서 선수협의회 사무실 개소식이 있던 날, 익명의 팬들이 보낸 책상과 걸상 복사기 등 각종 집기가 답지했다. 그들은 곧 이어 ‘팬들의 선물’이란 후원단체를 만들어 거리에서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벌이고, 시민단체에 찾아가 눈물어린 호소를 아끼지 않았다. “선수협의회, 힘내세요”라면서.

팬들의 두 가지 반응을 굳이 대비시켜 보았다. 이는 편견이나 특정 그룹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다. 나는 우리 시대 팬 문화의 두 가지 상반된 현상을 지금 말하려는 것뿐이다. 스타에 대한 팬들의 동일시 욕망은 자본주의 대중문화의 탄생과 함께 했다. 자본주의 대중문화는 철저한 마케팅을 통해 팬들의 동일시 욕망을 상품 형식으로, 끝없는 충성심으로 변형시킨다.

우리 아이들이 한때 10만원이 훌쩍 넘는 나이키 신발을 산 유일한 이유는 단지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 광고모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팬들은 스타의 그림자를 밟고 다니는 벙어리 어릿광대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싶어했다. 그들은 스타의 동작과 스타일만을 따라하는 수동적인 객체에서 스타의 사회적 동반자이자, 행동전위대로 자처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었다.

문화 연구자들은 그런 현상을 ‘팬덤 문화(fandom culture)’라고 말한다. 팬덤 문화는 스타의 개인적 성향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스타의 사회성을 인지하고 결국은 스타의 개인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려는 팬 문화를 의미한다. 가령 영화 ‘더 팬’의 실제 주인공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강타자 배리 본즈의 열성팬이었던 한 백인 남자가 동성애적 연대의식을 보여주었고, 시애틀 그런지의 대표적 밴드인 ‘펄 잼’(Pearl Jam)이 주도한 미국의 독점예매사 ‘티켓 마스터’ 반대행동에 절대 다수의 팬이 참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팬덤 문화가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직 한 명의 스타를 위해 익명의 다수가 맹목적으로 단결된 힘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예컨대 서태지의 은퇴와 컴백으로 이어지는 지난 4년 7개월 동안 그의 팬들이 보여준 행동은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이례적인 것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했어도 그들은 계속 남아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서기회)’를 만들었다. 그들의 힘은 문화검열의 대표적 제도였던 음반사전심의제를 폐지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서태지와 ‘서기회’는 별개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태지가 그들 앞에 현현하는 날, 그들 역시 맹목적 동일시의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들은 그가 귀국하는 날 공항을 점거했고, 컴백 스페셜 무대 앞에서 일주일 전부터 철야를 했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록그룹 ‘X저팬’의 리더 마츠모토 히데토가 자살한 뒤 일본에서는 동반자살한 팬들이 있었고, 부산의 한 여고에서는 학교방송국을 통해 그를 추모하는 묵념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스타잘못 따끔하게 혼내야▼

문화권력이 된 하드코어에 열광하는 서태지 팬이나 강타의 명백한 범죄행위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려는 팬들이나 모두 자기성찰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팬덤 문화는 스타에서 출발해 스타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이번 강타의 잘못을 얼버무려 변호하지 말고 따끔하게 혼낼 줄 알고, 하드코어를 스타일화하는 서태지의 상품 형식에 때로는 반기를 들 줄 아는 팬 문화가 진정한 팬덤문화가 아닐까? 자기성찰이 없는 팬들의 오만은 스타에 대한 애정 어린 선물이 결코 아님을 기억하길 바란다.

이동연(문화평론가·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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