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디오스(dios),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입력 2000년 11월 25일 12시 22분


냉장고 CF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이름, 바로 여자. 디오스를 보면서 슬그머니 낯이 뜨거워졌다. 냉장고 한 대로 여성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블랙톤과 회색톤으로 꾸며진 심은하의 모던한 방. 광고는 그녀의 방을 든든하게 지켜 주는 냉장고를 클로즈업하며 시작된다. 이때 'Only Love'를 부르는 조수미의 영혼을 흔드는 목소리가 깔린다.

주방 바닥의 물방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멋진 와인 한잔이 놓여있고, 심은하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편안하게 누워있다. 노출에 엄격한 심은하가 TV 광고에서 목욕 신을 위해 벗은 건 우선 놀랍다. 은백색의 디오스와 물이 찰랑거리는 흰 욕조의 배치는 도발적인 느낌마저 풍긴다.

심은하의 가장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걸까. 디오스 냉장고에 장착된 인터넷 모니터에 '심은하는 외출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그리고 우아한 자태의 심은하는 와인잔을 들며 매혹적인 미소와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들에게 속삭인다. '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

디오스는 기존의 냉장고가 익히 보여주던 광고와는 다른 독특한 광고전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는 주로 새로운 냉각기능을 설명하거나 문을 열어 내부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하지만 디오스는 제품의 기능보다는 이미지를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뒤통수를 때리는 한마디. 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 '여자'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냉장고 한대로 좌지우지되는 것일까. 그것을 가지면 여자로서 행복해지는 거고 가지지 못하면 소외당한다?

남자들이 광고에서 대부분 자아실현과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인간이라면, 여자들은 쇼핑가방을 든 채 행복해하고 다른 여자가 가진 물건을 탐내는 '소비'의 노예처럼 표현된다. 그렇다고 디오스를 남성우위 사고방식이라는 한가지 코드로만 읽고 싶지는 않다. 여자라서, 남자라서 이런 식으로 편가르는 모든 광고는 양쪽 모두를 억압할 뿐이니까.

디오스는 고급스럽게 포장했어도 그 바닥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는 보수적이고 억압적이다. 냉장고 하나로 자신의 행복지수를 가늠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발을 꽁꽁 묶어 두는 것. 그것은 여성의 진정한 '자기표현'을 소비로만 치환하려 드는 것이다.

사실 디오스는 평범한 가정의 여자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광고에 나오는 은하수색 제품은 디오스 홈페이지에 3백69만원으로 적혀 있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1백50만원 안팎인 고급 브랜드다. 특별히 능력 있는 여자거나 고급 '사모님'쯤 되어야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심은하의 그 흐뭇한 미소, 최고의 행복한 이미지를 맛보기 위해 어쩌면 여자들은 디오스를 사들일 것이다. 마치 자신의 고액소비가 행복을 대변하는 척도인양 착각하며. 그러나 묻고 싶다, 디오스를 사는 여자들에게. '여자로서 정말 행복해지셨습니까?'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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