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승호/얼어붙은 지방大취업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20분


광주의 A대학은 이달 중순 교내에서 개최하려던 취업박람회를 돌연 취소했다. 지난달 국내 100대 기업을 비롯, 호남지역 기업체 등 1000여곳에 협조서한을 보냈으나 참여의사를 밝혀온 기업이 별로 없는 데다 특히 대기업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이 대학 취업담당자는 “올해 대기업 인사부장들을 초빙해 수차례 취업특강을 여는 등 ‘구애작전’을 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며 “대기업의 지방대 홀대를 피부로 느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 28일 전남도청에서 전남지역 7개 대학 취업관계자와 노동청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에서는 대기업의 지방대생 채용 기피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B대학 취업관계자는 “여수시 여천산업단지에 50여개 대기업 공장이 입주해 있지만 생산직 몇 명만 현지에서 채용하고 관리직은 서울의 본사 또는 그룹차원에서 모집해 우리 대학 출신은 찾아볼 수 없다”고 푸념했다.

이런 사정은 더욱 나빠져 요즘 지방대학은 ‘취업 빙하기’라고 할 만하다. 경제가 또다시 어려워지면서 중소도시 대학은 물론이고 대도시 소재 대학 졸업자도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대학 취업담당자들은 토익이나 토플 등 ‘객관적인’ 성적이 우수한 경우에도 최종 면접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지방대생을 평가절하하는 기업체 풍토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연히 일리가 있는 항변이다. 그러나 대다수 지방대학이 스스로를 특화시키는 대신 서울소재 대학과 똑같은 학과와 전공, 특색없는 백화점식의 교과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방의 몇몇 대학은 산업현장에서 꼭 필요로 하는 학과의 개설,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 철저한 현장수업 등으로 졸업생을 꽤 많이 취직시키고 있다.

정승호<지방취재팀>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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