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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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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준씨와 이경자씨는 처음엔 동지였다. 돈을 빌려주고 빌려쓰는 과정에서 주가가 뛰고, 그래서 돈방석에 앉아있을 때 두사람 사이에는 평화가 흘렀다. 그러나 주가가 폭락하고 소유한 벤처기업들이 부도가 나면서 두사람은 적이 됐다.
정씨와 그의 회사 비서실직원들과의 관계도 그랬다. 정씨 회사가 창창하던 시절 그들은 일심동체였다. 하지만 회사에 위험이 닥쳐오면서 일부는 자금을 빼돌리기 바빴고 일부는 수사과정에서 정씨의 죄과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래서 정씨는 “내가 감옥에 가는 날 그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부하직원들을 저주했다던가.
한때 동지였다가 결국은 적이 된 경우가 우리 주변엔 많다. 대부분이 나눠갖기 어려운 권력과 돈 때문이다. 해방정국 이후 반세기를 이어온 우리의 정치판부터 그렇다. 수많은 이합집산 속에서 한때의 동지가 적이 되고 한때의 적이 동지가 된 경우가 오죽 많은가.
지금은 불편해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도 수십년동안 동지였다.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경쟁하면서도 민주화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 뛰었다.
우여곡절 끝에 의―약―정 협상이 타결됐지만 이 과정에서 의사들도 적을 많이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환자나 시민은 물론, 같은 계열이라 할 수 있는 약사 간호사들의 의사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그뿐인가. 직장이건 사회건 우리는 너무 적이 많다. 피를 나눈 집안이나 형제간에도 재산을 두고 적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대중 정부도 출범 이후 적이 많이 생겼다. 여러 개혁작업과 인사, 경제난 속에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원망이 간단치 않은 것 같다. 물론 상당부분 오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부 정치인의 의도적인 부풀리기와 지역감정,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사실로 믿고 정권을 미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차원에서 좀더 매끄럽게 처리할 수도 있는 사안을 방치해 일이 뒤틀린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개혁의 당위론만을 생각했을 뿐 개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마음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가령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나야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얼마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이 많은 세상은 어쩐지 살벌하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내고 상대를 타도해야 내가 사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각박하고 고단한가.
최근 한 퇴직인사의 자녀 결혼식에 과거 직장동료 등 수많은 사람들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한 하객은 “정말 놀랐다”며 “혼주가 평소 직장생활을 하면서 전혀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했다.
지금은 물러났지만 현정부에서 2년이상 장관자리를 유지했던 한 인사는 재직시절 장관장수비결을 묻는 질문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적은 원래 없다. 다만 마음속에 있을 뿐이다”라는 글귀를 읽은 기억이 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정권이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붙잡으면 적은 생기지 않는다.
<송영언기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