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도쿄에서]'경계를 넘는 지'

  • 입력 2000년 11월 10일 18시 48분


■경계를 넘는 지(越境する知) / 구리하라 아키라 고모리 요이치 외 펴냄 / 도쿄대 출판국

이 책은 6권으로 된 시리즈이다. 현재 6권 모두 출판이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 몇 권이 머지 않아 발간될 예정이다. 각 권의 제목이 ‘신체―되살아나다’ ‘말하기―자아 내다’ ‘담론―잘라 찢다’ ‘장치―부수고 쌓다’ ‘문화의 시장―교통(交通)하다’ ‘지(知)의 식민지―경계를 넘다(越境する)’라는 데서, 우리는 이 시리즈를 위하여 편자들이 얼마나 고심과 토론을 거듭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위의 상징적인 제목들이 가르쳐 주는 바와 같이, ‘근대’에 대한 절박한 물음과, 근대라는 집을 짓는 데에 중요한 기둥 역할을 했던 ‘학문’에 대한 심각한 반성으로 일관되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편자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 모두는 근대 지(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 이 ‘갇혀 있음’을 내부에서 찢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리즈 전체를 흐르고 있는 모티브다. 그러므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근대에 대한 비판을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 가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구태여 이 같은 시점을 택하고 고집해야만 하는가. 근대사회란 괴물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교묘하게 근대 그 자체의 내부에 삼켜 버리고 만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근대를 안쪽에서부터 찢고 나오는 ‘내파(內破)하는 지(知)’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편자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시리즈에서는, 근대가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보편성 객관성 합리성 등의 한계를 확실히 잡아냄으로써, 근대 세계에서의 탈피를 기도한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지식의 현장성과 신체성의 복권이다.

이 시리즈의 필자들은,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연구자는 물론이고, 극작가 화가 무용가 조각가 음악가 등 예술가를 비롯하여, 정신과의사와 장애자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나아가서는 반핵 반공해운동에 몸 바치고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 대부분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실천가들이다. 그들은 현장에서 직면하는 근대의 얼굴을 파헤치고,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돌파구를 찾으려고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과 예술, 연구와 실천으로 가르고 분단시켰던 벽을 허물어뜨리려는 것이다. 이처럼, 각자 자신들의 영역이 가지는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방면으로 뻗어 가는 지(知)의 가능성을 자유롭게 꽃피움으로써, 근대사회가 좁은 공간에 가두어 버렸던 인간정신을 해방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일종의 모험이다. 그러나 모험에는 언제나 실패가 따르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우리는, 근대 비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려 시도하는 이 시리즈의 대담성과 패기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고 싶어진다.

이연숙(히토츠바시대 교수·사회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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