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雁行(안항)

  • 입력 2000년 11월 9일 23시 25분


새 중 기러기만큼 상징성이 풍부한 것도 드물 것이다. 첫째는 夫婦愛(부부애)다. 우리의 전통 혼례 중에 보이는 奠雁禮(전안례)는 신랑이 신부집에 木雁(목안·나무로 깎은 기러기) 한 쌍을 가져가 바치고 절을 하는 것이다. 신부의 어머니는 기러기를 치마에 받아들고 신부가 있는 안방으로 던지는데 이 때 木雁이 누우면 딸을, 일어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기러기는 암수의 사이가 좋고 워낙 절개가 곧아 짝을 잃게 되면 끝까지 節操(절조)를 잃지 않고 홀로 지낸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홀로 된 사람을 ‘짝 잃은 외기러기’라고 하며 한자로는 孤雁(고안)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信義다. 이 놈은 때가 되면 옛 보금자리로 다시 찾아드니 그 信義가 남다르다는 생각에서다. 옛날 중국에서는 天子가 高官에게 기러기를 선물로 주었으며 大夫간에 會盟(회맹)을 할 때에는 기러기를 주고받았다.

세 번째는 信鳥다. 기러기의 정확성과 歸巢性(귀소성)을 이용한 것이다. 봄이 되면 날아갔다가도 가을이 되면 다시 날아옴으로써 기러기는 가을을 알려주는, 즉 소식을 알려주는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僻地(벽지)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종종 傳令使(전령사)로 이용하기도 했다.

漢武帝(한무제) 때의 蘇武(소무)가 匈奴(흉노)에 잡혀 있을 때 기러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했던 것은 유명하며 우리의 고전소설 積成義傳(적성의전)에도 成義가 기러기 편에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소식을 전한다는 대목이 보인다. 또 인도를 여행했던 新羅 高僧(고승) 慧超(혜초)는 머나먼 북쪽의 고국이 그리웠지만 소식을 전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적었다.

내 나라는 북쪽 하늘가 이 곳은 남쪽 땅 끝

더운 남쪽엔 기러기도 없으니 어느 새가 鷄林(계림)으로 날아가리.

雁帛(안백) 또는 雁書(안서)라면 ‘기러기 편에 보내는 글’이 되어 ‘편지’나 ‘소식’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兄弟간의 友愛다. 節度를 지키며 줄을 지어 날면서 함께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마치 兄弟간의 다정한 友愛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나는 모습을 雁行(안항)이라고 했으며 그것은 兄弟를 뜻하기도 한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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